손님, 포장하신 단점 나왔습니다

감출 수 없다면 포장이라도 예쁘게

by 오보람

막연한 기분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직장의 개수만큼 숱한 자기소개서를 쓰며 단점을 장점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만 단점이라 불렀다. 그렇게 만들어 낸 자기소개서는 오랜만에 갖은 화장품으로 단장한 어색한 내 모습 같았다. 어차피 채용되지 않을 거라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도 주저할 게 없었다. 과연 단점은 그저 단점이기만 한 것일까. 나의 단점은 누군가가 보기엔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지금의 나는 어떤 거짓말을 해왔을까?



첫 번째로 나는 숫자를, 특히 돈과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수없이 머뭇거린다. 혹시 내가 틀린 거 아닐까, 어디서부터 틀렸을까, 내가 혹시 이 돈을 잘못 보내면 어떡하나. 머릿속에 온갖 비극적인 상상이 가득 떠다니다 그 일을 해치워야 하는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오면 겨우 실행에 옮긴다. 어쩔 수 없이 마감기한이 임박해야 손에서 떠나보낸다. 다행히 아직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이 머뭇거림은 신중함과 꼼꼼함이라는 포장지에 예쁘게 감싸 단점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때에야 자기소개서라는 쇼케이스에 진열된다.


두 번째로,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주워들은 게 많은 사람이라 많은 것에 대해 얕게 알고 있긴 하지만 전문적으로 깊게 알고 있는 것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회사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충분히 알게 되도록 기회를 주지도, 지켜보지도 않는다. 게다가 직장도, 직무도 자주 바뀌는 편이라 숙련되기 전의 지식들은 다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길어지는 사회생활은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지식으로 보기 좋은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면접에서도 진실보다는 면접관들이 듣고 싶어 할 법한 말을 잘 꾸며 내놓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이다.



세 번째로, 나는 한 자리에 나를 포함해 3명 이상이 모여있으면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나는 1:1 대면 대화에 가장 활발하고, 그다음이 전화나 다른 매체를 통한 1:1 대화, 그리고 3명 이상의 상황이 되면 내가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할 자리인지 먼저 따져본 후에 입을 연다. 먼저 따져본다는 것은 결국, 눈치를 보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와는 다르게 이 특성은 면접관도 면접 때는 눈치채지 못한다. 면접관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아주 적극적이고 큰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새로운 곳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거쳐온 회사의 수만큼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할 상황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 단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무기이기도 하다. 이것들을 보완하려는 과정에서 당장의 단점이, 아주 사소한 것인 양 보이게 하는 여러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김새는 똑같지만 크기가 다른 마트료시카 인형이 잔뜩 들어있어도 전혀 알 수 없는, 마치 포장을 뜯기 전인 선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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