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그렇게 먹고 싶어서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집에 가는 길에 꼭 어묵을 사주셨다. 분식집 사장님은 긴 어묵 꼬챙이를 들기 힘든 어린이는 나무젓가락 하나에 끼워 주었다. 어묵 가판대 주변에는 작고 빨간 바가지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어묵 국물을 담아 마시는 용도였다. 어묵을 먹고 있는 사람들 앞에는 모두 엄지와 검지로 잡을 수 있는 빨간 바가지가 자리해 있었다. 뚝배기에 간장, 파, 청양고추, 깨 등으로 양념한 어묵 간장은 집집마다 다른 레시피로 보기엔 비슷하지만 조금씩 맛이 달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모든 사람이 뚝배기에 담긴 간장에 자신의 어묵을 찍어 먹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자신이 쓰던 숟가락으로 국을 떠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 자신을 먹여 살려야 할 순간이 오면서 나는 나를 해칠 것 같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들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음식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어느샌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요리가 아닌 함께 먹어야 하는 모든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소스를 찍지 않는 건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었다. 회를 먹을 땐 초장을 찍지 않고 회만 먹었고, 만두를 먹을 땐 간장을 찍지 않고 만두만 먹었다. 감자튀김의 짝꿍은 케첩이지만 우리 집엔 뜯지 않은 작은 파우치 케첩이 잔뜩이다. 그래도 회는 고소했고 만두와 감자튀김은 짭짤했다. 좋아하는 김밥을 먹을 때도 단무지나 다른 반찬을 챙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딱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건강을 생각해서도 아니다. 맛있지만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참으면서 스트레스받느니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탕수육은 거의 먹을 일이 없지만 소스를 부어먹는 것보다 찍어먹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찍어먹지도 않는다. 꼭 소스를 먹어야 할 때는 미리 쓰지 않은 숟가락으로 앞접시에 따로 담아 먹는다.
다시 사회생활을 하려면,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의 정서에 맞게 나를 바꿔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처럼 나에게 별종이라거나, 까다롭다거나 하나씩 말을 보태는 사람들을 흘려버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사실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좋은 점 중 하나가 굳이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 누군가와 같이 식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혼자 있는 동안 철저히 나를 위해 살고 있다. 내가 먹을 요리를 하고, 나를 위해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나를 위한 일들로 일상을 꾸린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생활비를 벌지 않는 삶이 지속 가능할 수는 없다. 지금의 일상은 과거의 내가 몸과 정신을 갈아서 만들어 낸 오늘이니. 서류와 면접에서 탈락하는 것도 속상하지만 이게 반복되고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니 다시 사회에 나가는 게 조금은 겁이 난다. 매일 어떤 선택이 나를 위한 건지 지금도 잘 모르지만, 지금의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