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피하는 사람의 이야기
2021년 5월의 날씨는 생각보다 변덕스러웠다. 어제는 아침부터 세상이 무너질 듯 비가 오더니, 오늘은 발바닥에 달라붙는 먼지들이 숱하다. 나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산책 코스는 보통 불광천의 시작점인 응암역에서 6호선을 따라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한강 입구로 들어설 때쯤 다시 응암역으로 돌아간다. 날씨가 맑은 날은 시간에 상관없이 사람이 많다. 오전에는 어르신들이, 오후와 저녁에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강아지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그들은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모든 개체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 강아지들은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이 근처에 지나가면 그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나는 저 멀리서 강아지가 오는 것을 발견하면 일부러 산책로가 아닌 자전거 도로로 살짝 빠지거나, 아니면 강아지가 아닌 주인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걷는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주인이 일반적인 성인이 아닌 어르신일 경우는 더 경계한다. 어르신들은 대체로 강아지가 돌발행동을 하면 제어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5년까지 우리 가족은 2층 주택에 살았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2층엔 우리 가족이 살고 1층엔 세입자가 들어와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세입자로 들어온 한 할아버지는 크고 하얀 진돗개 한 마리를 키웠다. 썩 순한 녀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은 그 진돗개를 만지는 데 스스럼없었지만 나는 개를 만지는 것도, 근처에 가는 것도 굉장히 꺼려졌다. 다행히 늘 목줄에 묶여있던 터라 사고가 일어났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오전에는 4교시까지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으로 바이올린을 일주일에 세 번씩 배우고 있었다. 그날도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내 몸집 만한 바이올린을 등에 지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골목의 분식집 옆에서 갑자기 한 강아지가 나타났다. 나는 최대한 강아지를 신경 안 쓰는 척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강아지가 속도를 내더니 내 쪽으로 달려왔다. 갑자기 엄청난 불안이 덮쳐왔다. 내 다리는 강아지를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내 쪽으로 와서 나를 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생존을 위한 질주는 계속되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아무리 달려도 강아지는 여전히 나를 쫓아왔다. 나는 강아지가 집까지 쫓아올까 봐 집으로 곧장 향하지 못하고 동네를 빙빙 돌고 있었다. 등에 진 바이올린의 무게 때문에 힘이 점점 빠질 무렵 다행히 지나가던 아저씨가 발로 그 강아지를 저지했고, 강아지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걸 확인한 나는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누군가 강아지에 대해 어렸을 때 안 좋은 기억들이 있냐고 물으면 보통 굳이 답하지 않았다. 나에게 정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호기심 해소용 질문거리로 소비되는 게 싫었다. 강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2017년, 서울에서 처음 다닌 직장에서 우리 팀은 한 카페를 대관해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카페는 카페 주인이 내부에서 본인의 애완견을 키우고 있어 애완견의 출입이 자유로운 카페였다. 나는 몇 번이나 팀원들에게 강아지를 무서워하니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꿔줄 수 없냐고 수 차례 요청했지만 신입사원의 깜찍한 소리라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행사 당일, 카페 주인의 강아지와 행사 참가자들이 데려온 강아지 2마리 때문에 행사 진행에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날 강의의 메인 프로그램인 강의가 진행 중일 때, 나는 갑자기 내 앞으로 다가온 카페 주인의 애완견 때문에 카페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생존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그날의 마지막 호소였다. 지금은 그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회사라 불리는 곳이었지만, 직원을 위해 작은 배려도 해줄 수 없다면 다닐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헤어숍, 책방, 카페에서도 강아지를 키우는 곳이 있다. 사람들은 가게에 상주하는 강아지를 보며 대부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게는 기피 대상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든, 맛있는 디저트가 있어도 가지 않는다. “왜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무서워하냐”는 사람들의 핀잔과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들은 내게 엄청난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심지어는 강아지를 안고 와서 나에게 만져보라고 하며 “이렇게 순한데 왜 무서워? 만져 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아지가 등장하는 영상이나 사진들을 내 눈앞에 내밀며 “봐봐, 엄청 귀엽잖아. 이게 왜 무서워?”라고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
“네가 강아지보다 훨씬 큰데 왜 저렇게 조그만 애를 무서워하냐”며 한심해하는 부모님에게 나는 늘 한 마디를 덧붙인다. “‘우리 강아지는 안 물어요’라는 말은 사실 ‘우리 강아지는 (저를) 안 물어요’라는 뜻이지 주인 아닌 사람은 무는 지 안 무는 지 주인도 확신할 수 없어요.” 관심과 배려를 가장한 참견들은 이제 한 귀로 듣고 바로 흘려버릴 정도로 이골이 났다. 앞으로도 강아지를 가까이할 일은 없을 것이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과 더 밀접하게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