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호, 제가 좀 유난스러워요
늘 집에만 있는 백수지만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 가끔 외출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만난 지인은 벌써 코로나가 2번이나 왔다 갔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아직 한 번도 그 불청객을 만나지 않았다. 나의 원가족들도 이미 3월에 한 번 씩 걸렸던 터라 내가 대단한 면역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짐작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많이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면이 있어서 지금까지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버겁게 느끼는, 나의 원가족마저 탐탁지 않아하는 나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1.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부터 씻는다.
이 무슨 당연한 말이냐 할 수도 있는데 밖에서 돌아오면 비누로 손을 두 번 씻고 밖에서 만졌던 물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다시 만지지 않는다. 핸드폰처럼 꼭 손을 대야 하는 것이라면 알코올 솜으로 손이 닿았던 부분들을 닦은 다음에야 쓴다. 외출 후 손을 씻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마스크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만 가능하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최대한 손이 깨끗할 때 만지려고 한다. 집에 들어오면 완전히 혼자가 되기에 나를 지키려 애쓸 필요가 없지만, 그만큼 무방비하기에 바깥의 환경에서 나를 해칠 수 있을만한 것은 가지고 귀가하지 않는다.
2. 한 번 싱크대로 들어간 조리도구는 세척하지 않으면 다시 꺼내서 사용하지 않는다.
2020년 코로나가 국내에 들어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 카페에서 일하게 됐다. 점점 창궐하는 전염병으로 인해 손님들이 매장을 이용할 수 없어서 포장 주문만 받고 있었다. 카페에선 몇 가지 빵과 간단한 식사류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1명의 파트너와 함께 바쁘게 주문을 쳐내고 있던 어느 오후, 빵을 썰었던 칼을 싱크대 설거지 볼에 넣었다가(설거지 볼에 물이나 다른 것이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다시 꺼내 쓰는 걸 봤다. 나는 속으로 놀랐지만 파트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카페에서 일을 해왔던 사람일 것이며 나는 까다롭다는 말을 많이 듣는, 카페에 온 지 몇 달 안 된 신입이었다. 그저 속으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혼자서 되뇌는 것 밖에는..
3.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마스크를 벗고 식사해야 하는 자리는 빨리 먹고 다시 낀다.
집에선 혼자 있으니 편하게 지내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실내공간(특히 사무실)은 잠시 물을 마실 때를 제외하곤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지만 사무실 대다수의 동료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무실 곳곳을 누볐다. 그러다 코로나 감염자가 나왔다. 코로나가 대규모로 창궐하기 전이라 사람들은 감염자를 비난하기 바빴다. 그래도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나는 항상 집에서 나가기 전 마스크로 코 끝까지 가리고 마스크가 얼굴과 잘 밀착됐는지 확인한 후 집을 나선다. 부득이한 식사 자리에서는 최대한 빨리 먹고 다시 마스크를 낀다. 웬만하면 자리도 창문이나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앉으려고 한다.
4. 변기 사용 후 물을 내릴 땐 반드시 뚜껑을 닫는다.
귀가 밝은 편이라 이게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는 건지, 아닌 건지 소리로 알 수 있다. 집에 뚜껑을 닫지 않는 손님이 왔다 가면 화장실 청소할 때 천장까지 닦는다. 한 번은 변기에 앉았을 때 눈에 보이는 정면에 '물 내릴 때는 뚜껑을 닫아주세요'라고 써붙여놔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지만, 우리 집에 손님이 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 생각은 멈췄다.
원가족과 한 집에 살 때는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려야 박테리아가 사방으로 튀지 않는다는 걸 몰랐지만, 알고 나니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는 가까운 지인이나 동생이 집에 올 때면 미리 말한다. 대체로 다들 양해해주지만 내 동생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투덜댄다. 예전에는 안 그랬던 사람이 혼자 살면서 왜 그렇게 깔끔 떠냐며.
5. 누군가 자신이 먹던 수저로 손을 댄 음식은 먹지 않는다. 특히 반찬과 국류
외식할 때는 보통 반찬에 손을 대지 않는다. 밖에서 먹는 음식은 반찬이 아니라 메인 메뉴만 먹기에도 배가 부르다. 국밥은 어차피 개인별 뚝배기에 담아 주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지만 한식 메뉴, 불고기 백반이나 같은 메뉴를 주문했을 때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오더라도 국을 한 뚝배기에 담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국자를 요청해서 덜어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먼저 본인이 음식을 먹던 수저를 국에 담그기도 한다. 국자를 받았는데 머쓱한 기분이다. 국에는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특성을 불쾌해하기도 한다. 특히 나의 원가족은 이게 더럽냐며 대놓고 화를 내는데 그래도 그냥 무시하고 안 먹는다. 국이 맛있는데 왜 안 먹냐고 물으면 원래 국을 잘 안 먹는다며 둘러댄다.
6. 음식물을 만질 때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
우리 집엔 주방에도 핸드워시가 있다. 특히 음식물을 만지기 전, 계란 껍데기나 육류를 만진 후에는 반드시 씻는다. 교차 오염 방지를 위해 고기를 썰었던 도마와 칼을 다시 사용해야 할 경우 세제로 꼼꼼하게 세척한 후 물기를 닦고 쓴다(여러 쿠킹클래스를 다녀봤는데 고기를 썰었던 도마와 칼을 그대로 야채 자르는 데 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강사도...) 개인별로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한 가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때는 좀 당황스럽다. 둥글둥글하지 않은 '뾰족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 다들 나와 같이 같은 조가 되지 않으려고 할까 봐 일부러 내 모습을 숨겨야 한다. 하지만 청결에 관한 건 역시나 중요하기 때문에, 육류를 썰었던 칼과 도마로 채소를 다듬으려고 하면 후딱 새 도마와 칼을 챙겨 건네주고 사용했던 도구들은 세제로 세척한다. 그러다 보니 쿠킹클래스인데 요리는 손도 못 대고 시간 내내 설거지만 하고 있다.
나의 이런 모습이 감당하기 어렵거나 버겁지는 않다. 나는 이렇게 까다롭게 해야 만족하기 때문에 괜찮은데,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모습이 눈빛과 행동에서 묻어 나오고 그 신호를 무시하면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나는 '나에게 미안한' 사람이 된다. 모든 인간관계가 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눈치 없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나에게 미안한 사람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