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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Dec 30.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고마운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걸

그래도 여기는 불합격이라고 알려주기는 하네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실패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눈으로든 감으로든 내가 합격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한숨과 쓴웃음만 남는다. 이번엔 그래도 불합격 문자라도 받았다. 그동안 수많은 면접과 지원서를 냈지만 늘 '무소식이 불합격'이었다. 이렇게 결과 안내라도 해주면 결과를 기다리다 못해 먼저 전화를 걸어 혹시나 했던 희망에 날이 시퍼런 비수를 꽂는다. 많은 채용공고가 '합격자 개별 연락'이라며 불합격을 굳이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희망을 가진다. 누군가, 혹은 그 자신이 그 희망을 깨어버리기 전까지.

 


   나는 매년 나 자신을 증명하고 경쟁하는 삶을 살았다. 11월 말, 토익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주변을 둘러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올해는 나 자신의 노력을 증명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어디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은 끝이 없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매일 있다. 지금도 있다. 앞으로도 매일 고민할지 모른다. 그런데, 포기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포기하지 못한다. 시간은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속절없이 흘러간다.



   수입이 없을 때 가장 불안해진 건 당연히 의식주였다. 옷은 어차피 사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먹을 것과 몸을 누일 곳은 금액을 지불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었다. 2022년을 통째로 쉬면서 처음 몇 달은 벌어둔 돈으로 충당했지만(이전에 꼬박 5년을 일했으니 금방 취직할 줄 알고 실업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가장 후회하는 선택이다)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한 회사에 들어가게 됐지만 직원들의 잇따른 퇴사로 업무가 무한대로 늘어나고, 대표는 충원할 생각 없이 있는 직원들만 갈아서 쓰고 있었다. 근무일, 근무 시간이 아니어도 내 생활을 포기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자리에 나는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의식주에 기부금까지, 건강도 좋지 않아 앞이 깜깜한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도록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은평구의 청년공간인 서울청년센터 은평 오랑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청년 공간이 없어서 이용하려면 꽤 멀리 나가야 한다. 집에서 은평 오랑을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오가며 여러 번 갈아타야 하지만 그래도 가는 이유가 있다. 가끔 은평 오랑에서는 시장에서 사 온 농산물로 직원들이 직접 요리한 반찬을 청년들에게 나눠준다. 썰렁한 밥상이 잠시나마 풍족해지는 순간을 누릴 수 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도 6년 동안 많은 실패 끝에 기어이 성취하게 된 것이지만, 혼자서 제자리걸음만 했더라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 건, 마포구 망원동의 한 책방 운영자였다. 내가 마포구에 살고 있진 않지만 마포구에서 일한 적도 있고 여전히 내 활동 반경은 그 언저리에 있으니 소재로 해서 글을 써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나는 책방 지기의 말에 따라 마포구를 소재로 글을 쓰고 이 글은 한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브런치를 염두에 둔 권유는 아니었지만, 써둔 글이 아까워 브런치에 첨부해 신청했더니 바로 합격했다. 그제야 내가 6년 동안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오직 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힌 기획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합격 소식은 기분이 좋지만 조금 씁쓸했다.



  어제와 오늘은 브런치 방문자 수도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혼자 말하고 혼자 쓰는 블로그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조회수가 적어도, 구독자가 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이 올 때까지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있으니 아직은 더 가 볼만한 삶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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