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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Jan 07. 2023

한 우물만 파면 어떻게 되냐고요? 뭐라도 됩니다!

세상이 최고만을 원하진 않더라고요



  음대 1학년 시절, 입학과 동시에 새내기 연주회가 열렸다. 선배와 동기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나는 겨우 10개월 공부하고 입학한 주제에 평생 음악을 공부한 학생들 앞에서 팔짱을 끼고 평가만 하고 있었다. 얘는 악기 빨, 쟤는 노래도 못하는데 어떻게 대학에 들어왔지? 내 주제는 모른 채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1학년이 어째 저째 흘러가고 맞이한 2학년, 나는 처음으로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실력이 많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공실기 과목은 절대평가였는데도 다른 동기들은 다 A를 받았지만 나만 B였다. 지금 생각하면 입학을 위해 평균 2년 이상을 공부했던 동기들과 달리 짧은 기간에 준비해서 입학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21살의 어린 학생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포기라는 큰 결정을 내리게 된다. 2학년만 마치고 편입 준비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2학년때부터 전공과목은 최소한의 학점만 채우고 나머지는 다른 과의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영문학, 경영학, 문헌정보학 등 재미있어 보이는 과목에 수강신청 버튼을 눌렀다.



  2학년을 마치고 한 해를 쉬었지만, 휴학 기간 동안 다른 활동에 매진하느라 편입 시험은 보지 못했다. 공부하려고 사놓은 책만 집에 가득 쌓여있었다. 1년 동안 공동 창업은 쉽지 않다는 교훈만 얻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졸업 학점을 빨리 채우고 후딱 졸업해야겠단 생각뿐이었다. 학년은 3학년인데 4학년과 같은 학번이라 학교엔 선배가 많지 않았다.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집합시키는 선배가 없어서 처음 며칠은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연습하고 싶을 땐 연습하고, 필참(필수 참석) 해야 하는 연주회도 많이 줄어서 정말 좋았다. 학교에서는 듣고 싶은 과목을 골라 들었다. 나는 점점 음악과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3학년 때 대다수의 동기들은 4학년이었다. 그들의 졸업연주회는 입학과 동시에 했던 첫 연주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잘하는 학생들은 계속 잘했고, '얘는 음악 말고 다른 길 찾아야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정말 노래를 잘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한 동기도 있고, 졸업하기도 전에 대학원 입학을 확정한 동기도 있었다. 나는 음악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려 했지만 재학 당시부터 하고 있던 공연장 안내원 아르바이트와 파트타임 강사를 병행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틈틈이 미용 학원도 다녔다(중간에 풀타임 직장에 취직하는 바람에 자격증은 못 땄다). 



  그 뒤로 나의 사회생활은 급커브의 연속이었다. 핸들은 있는데 목적지가 없었다. 일반 사무직부터 시작해 3D 프린터도 만져보고 국제 행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와 음료를 팔기도 했다. 용역 사업을 따는데만 집중하는 회사에서 야근을 밥먹듯이 하기도 하고, 공공기관에서 매뉴얼에 맞춰 일하기도 했다.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한 적도 있지만 길지 않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7년을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2년째 무직이다. 무적이 아니라 무직. 뉴스에선 비경제활동인구라고 말한다. 목적지 없이 급커브와 유턴을 반복하며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던 차는 결국 가로수를 세게 들이받고 나서야 멈췄다.



  이젠 졸업한 지도 꽤 지났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그때의 동기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살펴보면 참 재밌다. 내가 악기빨이라 무시했던 동기는 벌써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여전히 자신의 악기로 연주 활동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이 있는 것 같다. 독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 '교수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동기도, 입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꾸준히 좋은 합격률을 자랑하는 동기도 있다. 21살의 내가 만약 B가 아니라 A를 받기 위해 조금 더 노력했다면, 그래도 이 길을 끝까지 갔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실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중간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흔한 말이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잘하든 못하든 끝까지 하면 뭐라도 된다. 근데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부모님은 나에게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1등이 아니라도 된다. 2등, 3등, 아니 10,000등이 할 수 있는 모두 다른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으려면 1등을 해야 하겠지만 굳이 1등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쉽지 않겠지만 끝까지 가려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경쟁자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은, 나만의 고유한 재능을 발산하는 ONLY ONE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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