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보람 Jan 08. 2023

청첩장을 받지 않은 결혼식에
축의금을 보냈다

가 돌려받았다



   브런치 메인에서 청첩장과 관련된 글을 봤다. 나는 아직 미혼이라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려야 할지 미리 생각해 보거나, 내가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의금을 낸 사람들을 따로 챙기지 않는다. 브런치의 여러 글을 읽다 보니 지금까지의 내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청첩장을 받지 않은 결혼식에 간 적이 있다. 청첩장을 안 받은 결혼식은 가지 않는 게 맞다고 하던데 나는 내 기준에 따라 결정했다. 내 기준은 '내가 축하해 주고 싶은가' 이것 단 하나였다. 철 모르던 20대 시절, 회사 동료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에게 결혼 소식을 직접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같은 업계에 있었기에 지인들이 겹쳐서 참석했다.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이따금 나에게 도움을 준 동료라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결혼식엔 조금 늦게 도착해서 당사자를 만날 순 없었지만, 축의금 5만 원을 건네고 지인들과 밥을 먹은 뒤 예식장을 나왔다. 결혼식이 끝난 후 바로 연락이 오진 않았지만 나중에 본인 결혼식에 와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 후,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같이 밥 한 끼 하자며 부르는 연락을 받았다. 그 친구는 대전에 살고, 나는 서울에 살고 있어 거리가 상당했지만 서울로 직접 오겠다고 했다. 아, 결혼하는구나. 서울까지 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친구와 강남의 한 줄 서서 먹는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청첩장을 받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겠다고 했다. 장소는 친구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날짜도 주말과 연결된 한글날이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도 뵐 겸, 겸사겸사 고향에 가게 되었다. 친구의 결혼식 당일, 미리 축의금을 준비 못한 나는 식장 로비의 ATM에서 급히 30만 원을 찾아 봉투에 넣었다. 결혼식장의 ATM은 수수료로 1,300원을 받아갔다. 하지만 수수료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그날의 가방순이였던 신부의 언니에게 봉투를 주고, 결혼식을 보고 식사를 맛있게 한 뒤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에게서 와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신혼여행을 갔다 온 뒤에도 다시 한 번 서울로 와 작은 선물을 손에 쥐어주고 친구는 다시 내려갔다.



   6개월 전, 꽤 긴 시간 같이 살았던 하우스메이트 A가 결혼을 했다. A와 나는 밤엔 치킨을 함께 뜯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코인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유명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아서 나는 A와 친하다고 생각했다. A와 나 사이에는 겹치는 지인들이 많았다. 나와 A, 그리고 지인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A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A의 결혼식장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였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거리였고 장롱면허로는 운전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먼 거리라 결혼식에 참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의금만 전해주겠다며 A에게 먼저 연락했다. A는 내가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집 근처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계산은 A가 했다. 나는 얼마간의 금액과 짧은 손 편지가 들어있는 축의금 봉투를 건넸다. 그리고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그날은.



   며칠 뒤 A에게 연락이 왔다. 금액이 너무 많다며 돌려주겠다고 했다. 총 금액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줬다. 사실 여기서 기분이 상하긴 했다. 청첩장도 안 줬는데 내가 괜히 설레발친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A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연락하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연락이 와도, 안 와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A도 나처럼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인지, 잊지 않고 연락이 왔다. A의 집 근처에서 비싼 저녁 식사를 했고 나에게 선물을 건넸다. 이 정도면 나머지 3분의 1도 다 쓴 것 같았다. 받은 선물은 고맙긴 하지만, 내가 준 선물을 돌려줬다는 사실에 한 번 마음이 완전히 떠 버리니 내 마음은 그냥, 씁쓸했다.



   A의 마음은 내가 알 길이 없지만 A와 나는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철없던 시절 처음 청첩장을 주지 않은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해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번에도 반가워할 줄 알았다. 하지만 A에겐 자신이 청첩장을 주지 않은 사람에게서 축의금을 받은 게 많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친하다고 생각한 만큼 A는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A와 나의 관계는 평행선이 아니었던 거다. 내가 계속 아래로 눌러서 시소는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엉덩이를 떼고, 굽혔던 무릎을 피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어떤 관계든, 혼자의 노력으로 이어가기는 어려우니 지금의 내 마음이라면 머지않아 바닥에서 발을 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우물만 파면 어떻게 되냐고요? 뭐라도 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