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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Jan 09. 2023

장롱면허 탈출, 올해는 할 수 있을까

우당탕탕 운전면허 취득기




   2023년이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운전면허 적성검사였다. 벌써 면허를 딴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미리 해두면 앞으로의 10년이 편하겠지. 사실 적성검사를 서두른 데는 이유가 있다. 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으려면 신체검사를 해야 하는데, 최근 2년 이내에 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을 받은 기록이 있으면 적성검사를 위한 신체검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운전면허시험장 방문 없이 인터넷 신청이 가능하다. 나는 2년 전인 2021년 초의 공단 건강검진 기록이 있어 유효기간 2년이 끝나기 전에 빨리 끝내고 싶었다.



   나는 운전면허 '갱신'이 아니라 '적성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종 면허는 갱신이라 부르고 1종은 적성검사라는 명칭을 썼다. 무슨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운전면허를 따는 시기는 수능 시험을 친 후가 가장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시모집 실기시험 준비에 바빴던 터라 때를 놓쳤다. 운전할 일이 없어 잊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운전면허를 따기 쉬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하며 집 근처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1종 보통을 선택한 이유는 나중을 위해서였다. 내가 독립하고 부모님과 따로 살게 되면, 한 집에서만 쭉 사는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 오게 된다. 그때 1종 면허가 있으면 트럭만 빌려서 혼자 이사를 할 수 있으니(???) 주저 없이 1종으로 선택했다. 지금 떠올리면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우리 집 15층인데. 트럭이 문제가 아니지, 이 많은 짐을 어떻게 가지고 내려가서 차에 실으려고. 그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튼 과감하게 1종 보통을 선택하고 필기시험은 아주 쉽게 통과했다. 기능시험도 앞으로 50미터만 가면 되는 거라 어렵지 않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술술 풀릴 리가 없는데...



   드디어 도로주행이다. 지금은 어떻게 바뀐 지 모르겠지만 그땐 도로주행은 6시간 수업 후 면허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면허 시험장을 가지 않고 학원에서 시험을 칠 수 있어서 학원에서 정해준 코스 4개를 6시간 동안 돌았다. 학원 차를 타고 도로에 나가면 다른 차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터준다. 보통 학원 연습용 차의 속도는 일반 운전자보다 훨씬 느리다. 그러니 운전자들이 알아서 피해 가는 게 재미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운전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건 학원 연습용 차량이 바로 앞에 가고 있을 때다. 특히 트럭은 잘못하면 시동이 꺼질 수 있어서 앞 차가 갑자기 시동이 꺼지면 부딪칠 수 있으니 안전거리를 지키며 앞 차와 속도를 맞춰야 했다.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트럭은 차체가 높아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도로는 거칠 것 없이 탁 트여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눈앞이 시원했다. 트럭을 운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클러치를 밟는 감각이다. 왼발도 고유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트럭으로 언덕을 올라가다 잠시 멈췄을 때, 다시 출발하려면 왼발은 클러치를 반만 밟고 오른발은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이때 클러치를 밟는 감각은 습득이 쉽지 않았다. 



   첫 시험은 실격 처리됐다. 우회전 지점에 있는 횡단보도에 아무도 없길래 쓱 지나쳐 핸들을 돌렸더니 바로 실격이었다. 횡단보도는 파란 불이 켜져 있었고 주변에 행인은 없었지만 이건 '면허 시험'이니 당연히 가지 말고 멈췄어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평소에 본 대로 하던 게 화를 불렀다. 첫 시험에 이어 내리 3번을 떨어졌다. 중앙선 침범, 과속 등등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점 및 실격 사유를 다 경험해 봤다. 한 번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3시간씩 다시 수업을 받았고, 9시간을 더 연습한 뒤 강사님은 "이제 운전 좀 하네"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들은 다음, 시험에 바로 합격했다.



   운전면허 취득을 위해 꽤 많은 돈을 썼던 터라 도로에 나갈 엄두가 안 났다. 이러다가 사고 내면 어떡하나, 내 차도 아닌데 폐차하게 되는 거 아닐까 온갖 걱정을 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운전에 감을 잡기 시작한 그때 시작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그때와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걱정으로 제자리걸음만 하는 동안 내 동생은 면허도 따고 사고도 몇 번 냈지만 이젠 고속도로도 거뜬한 베테랑 드라이버가 되었다. 우리 집에서 운전을 못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엄마, 아빠, 동생 모두가 운전 선생님이다. 올해는 장롱면허를 탈출할 수 있을까? 답은 잘 알고 있다. 자신감만 챙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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