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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Jan 12. 2023

아무도 나에게 열등감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2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다. 편의상 A, B 계정이라고 부르자. A 계정은 나의 얼굴을 아는, 실제로 만난 적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계정이다. 사실 말이 교류지 내 계정에 내 소식을 올리는 건 많아야 1년에 한 번이다. 종종 새로 올라오는 피드를 지켜보다 지인들의 결혼이나 행사에 선물 대신 댓글을 단다. 선물은 줘도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이젠 기대하지도 않는다. 댓글을 달며 '일단 당신에게 그런 행사가 있음을 알고는 있다'는 티만 낸다. 내 바닥난 인간관계는 피드에 무엇을 올려도 미동이 없다. 몇 명의 사람들이 하트만 누를 뿐. 그냥 아는 사람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봤을 때 대답하는 용도의 계정이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피드를 올리곤 했지만, 반응이 없는데 누가 궁금하겠나 싶어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요즘 마케팅 수단이 SNS, 특히나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지는 추세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계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든 B 계정. B 계정은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모든 것을 팔로우하고, 응모할 수 있는 이벤트는 전부 응모해 보고, A 계정에서 올리고 싶지 않은 지질한 일상을 가끔 올린다. 어차피 B 계정의 팔로워 중 현실의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도 B 계정의 팔로워인 그들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관심도 없지만. B 계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내 취향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거나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걸 올려도 될까 안될까 검열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은 타인의 팔로워와 팔로잉 목록을 열람할 수 있다. B 계정에는 취향으로 가득 찬 팔로잉 목록이 빼곡하고,  A 계정에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와 부합하면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올렸다. 누구나 축하해 줄 만한 성취, 남들이 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여가활동, 그런 것들 말이다. 보이는 이미지 따위 상관하지 않는 B 계정엔 맛없는 빵을 먹은 순간, 두둥실 딸기잼을 만난 순간, 게임의 기록을 경신하며 나만 아는 성취를 이뤄낸 순간 등 내가 살아있는 지금이 가득하다. 이 피드를 보고 누가 어떤 이미지로 나를 상상하든 상관없다. 나는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B 계정의 나는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모를 사람이니까.



  아무도 열등감을 가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할 오늘을 사는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행복한 현실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속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B로 도망쳤다. B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나는 내가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로 온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A는 있든 없든 상관없는 쉽게 잊힐 평범한 과거가 쌓인 곳, 내가 한껏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지금'은 B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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