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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Jan 15. 2023

식탁 위의 믿을맨, 피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예측 가능한 맛의 매력



  오늘 점심은 크림 리소토였다.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내가 먹고 싶었던 순두부찌개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하루의 첫 식사는 밥이 좋은데... 나는 보통 아침식사를 거를 때가 많아 점심엔 꼭 '밥'이 들어간 식사를 한다. 빈 속에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쉽게 탈이 나기 때문이다. 파스타를 파는 가게에서 밥이 들어간 메뉴는 리소토뿐이었다. 반찬은 피클 단 하나. 크림 리소토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좋은 반찬이었다. 미식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맛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피클은 '기대하는 맛'을 충분히 만들어내는 음식이다. 물론 사람들도 피클에 어마어마하게 맛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먹진 않겠지만. 



  특별할 것 없는, 식초의 톡 쏘는 맛에 길들여진 오이가 본연의 아삭함을 잃지 않고 입 안에서 조각나 바스러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내게 주어진 피클을 남긴 적이 없다. '내가 아는 맛'만을 보여주던 평범한 피클은 언제 먹어도, 시간이 조금 지나도 그대로였다. 오이뿐만 아니라 무와 양파도 종종 피클의 재료가 되곤 한다. 간장과 식초에 절여진 양파 피클은 돼지고기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식당에서도 몇 번이나 리필할 정도로 좋아한다. 당연히 내가 아는 맛인데도 말이다. 피클은 위험 부담이 적고, 실패하지 않는, 언제나 실망하지 않는 음식이다. 어디서 온 지 모를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한 이 밥상 앞에서도 맛으로 확실한 가치를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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