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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Jan 16. 2023

아현동 어딘가엔 타임머신이 있다


   아현동은 생각보다 범위가 넓다. 영화 <기생충>의 촬영지로 주목받은 돼지슈퍼 인근은 여전히 90년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따뜻한 동네였다. 마을버스 마포03을 타면 이 일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지만 이 버스를 탈 때는 꼭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잘 잡고 있어야 한다. 엄청난 경사와 커브 때문이다. 그런 걸 차치하고서도 수십 년 전 옛 모습이 궁금하다면 아현동은 꼭 한 번 와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현시장 입구


   마포03의 기점인 아현역 3번 출구 근처는 아현시장이 있어 활기도 넘친다. 따뜻함이 필요한 오늘, 붕어빵 천 원어치와 함께 집에 가는 것도 좋지만 도시 속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아현동에 가득한 고층 건물 사이 시장은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과 상인들마저 일찍 마무리하고 귀가했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시장에서의 온기를 가지고 집으로 간다.






  아현동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면 타임머신을 탄 듯 시간을 넘나드는 느낌이 든다. 평소엔 의식하지 않았던 전봇대의 전선들이 눈에 들어와 어지럽다. 아파트를 지나 수많은 계단과 언덕을 오르면 기와 지붕 집을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살던 주택은 까만 페인트를 칠한 철제 대문 집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대문이 있는 집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빨간 벽돌 건물도 쉽게 볼 수 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구석구석에서 사람의 손길이 보인다. 작은 동네지만 언제나 깔끔하고 반가운 느낌이다. 



  아현동은 중구와 마포구의 경계를 이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돼지슈퍼를 지나 언덕을 계속 올라가면 언덕 끝에서 사뭇 다른 풍경과 함께 마포구와 중구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도 만날 수 있다. 90년대에 머무르다 갑자기 2023년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고개를 돌려 둘러본다. 중구 방향은 아파트와 함께 인도와 도로가 나눠진 완연한 도시의 모습이다. 나는 고개를 다시 반대편으로 돌린다. 내 고향이 아닌 뜻밖의 아현동에서, 더이상 아이들의 목소리로 소란하지 않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동네는 추운 마음을 잠시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마을버스는 이제 높은 빌딩이 가득한 공덕으로 향한다. 이제 타임머신에서 내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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