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그림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by HH

오늘은 스위스 취리히 Lichthalle MAAG 전시공간에서 진행하는 ‘모네의 정원‘ 몰입형 예술(immersive art) 전시에 다녀왔다. 꽤나 큰 공간에서 40개의 프로젝터로 모네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이야기와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작품과 인생에 천천히 몰입되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Lichthalle MAAG 홈페이지, https://monets-immersive-garden.ch/en/media/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그림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 클로드 모네


아무리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좋은 시 한 구절에는 마음이 일렁이듯이, 그렇게 모네의 그림은 아름답다. 인상주의의 창시자로서, 그리고 말년의 ‘수련‘ 연작 등으로 이미 클로드 모네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 세 명의 인물의 눈을 통해 모네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모네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이가 있다면 모네 그 스스로가 말했듯이 아마 ‘외젠 부댕‘ (Eugène Boudi, 프랑스의 화가, 1824-1989) 일 것이다.

“내가 화가가 된 것은 외젠 부댕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 클로드 모네


어릴 적 모네는 이미 그림에 재능과 관심을 보였고, 주로 인물 캐리커처를 그렸다고 한다. 인물의 순간적인 특징을 잡아내는 모네의 재능을 알아본 외젠이 풍경화를, 특히 자연으로 직접 나가 그리는 풍경화를 시작할 것을 모네에게 권했다고 한다. 날 것의 자연은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이 시시각각 바뀌기에 사실주의를 표방하던 당시의 사조에서는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고 특히나 완성하는 작업은 드물었다고 한다. 때마침 상용화되기 시작한 튜브형 물감의 발명으로 야외에서의 작업이 한결 수월해진 것도 모네의 풍경화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외젠 부댕의 권유로 시작한 야외 풍경화 작업에서 모네는 말 그대로 자연과 사랑에 빠졌고 그가 인식하는 자연의 빛을 그리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자연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해요. 오로지 그 후에야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보고 이해할 수 있겠죠.”
- 클로드 모네

모네의 인생의 사랑, 첫 번째 부인 카미유(Camille Doncieux, 1847-1879)는 모네의 많은 작품에 등장하여 이미 익숙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따뜻한 햇볕이래 천사 같은 아들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카미유가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그녀의 마지막을 담은 모네의 ‘카미유의 죽음‘이라는 작품은 이전의 노란 햇빛과 같은 따뜻함과 대비되는 핏기 없는 보랏빛 충격으로 다가온다. 실시간으로 낯빛이 변하고 있는 죽음에 다다른 나의 아내. 그 낯의 빛 마저 잡아내 기록한 모네. 당시 인상주의 사조가 환영받지 못하며 궁핍에 시달리고 있던 모네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 작품의 완성과 앞으로도 이어진 그의 작품 활동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삶은 계속된다. 고난이 있더라도. 이렇듯 언제나 예술가들은 우리에게 작품을 통해 이러한 보랏빛의 마주하기 두려운 삶의 단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할 용기를 모두 보여준다.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좌), Camille on Her Deathbed, 1879(우)

마지막으로 모네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제10대 총리, 1841-1929)를 통해 모네의 삶도, 또 오늘의 이야기도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이 보여준 야만성에 맞서 싸울 힘이 예술에 있다는 둘의 공통된 믿음. (멋있다…) 그리고 조르주가 1926년 모네 사망 당시 관 위에 그리워진 검은 천을 “모네에게 검은색은 없다.” 며 꽃과 색으로 가득 찬 천으로 덮어 씌웠다는 일화는 그들의 우정을 잘 보여준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 8점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해할 분도 클레망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1926년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만을 위한 두 개의 방의 건축이 완료된 후에도 작품을 완료하지 못하고 있던 모네를 설득하여 전시를 완료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독려한 분이 조르주 클레망소였기 때문이다. 86세의 나이로 두 번의 백내장 수술 이후까지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던 모네와 끝까지 그를 물심양면 돕고 또 자극해 주었던 조르주의 우정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우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오랑주리 미술관, 사진 출처 Lenny, das kreative Universum 웹사이트 https://www.daskreativeuniversum.de/musee-de-lora


당시 인상주의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더라도, 오랑주리 미술관의 개관조차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더라도(심지어 늙은 화가의 심심한 작품이라며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끝까지 자신이 인식한 자연 속 빛의 아름다움을 그렸던 모네처럼. 모네가 보는 그 빛이 전쟁의 참담함을 이길 힘이 있다고 믿은 조르주의 우정처럼. 나는 그렇게 삶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믿고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며, 혹자의 비평에도 아랑곳 않으며 묵묵히 나의 길을 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전시였다.


감사합니다 모네, 외젠 부댕, 카미유, 조르주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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