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싱여행기 6화 - 은퇴 체험

배가 익어가고 있다.

by 붱draw

열흘 예정이었던 시조부모님 댁 생활이 열여덟 날로 늘어났다.

낙담만 하고 있기엔 주변에 감사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사랑스러운 고양이 아들 시스코와 고양이 딸 데이지.

우리가 머물던 방엔 큰 창이 있었는데,

디스코는 그 창을 통해 새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디스코는 그 창을 통해 새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사슴이 시야에 들어올 만큼 가까이 오는 날이면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사슴이 가까이 오는 날이면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 몰라했다.


디스코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주어 대견하고 고마웠다.


여행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해 준 시어머니와 이모님은 자주 안부를 물어주시며,

함께 미래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는 할머니의 조카 부부가 와서 저녁을 요리해 주시기도 했다.


무엇보다 디스코와 내가 더 머물 수 있도록 흔쾌히 받아주신 시조부모님 덕분에,

기다림의 시간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뜻밖에도 나에게 ‘은퇴 체험’이 되었다.




오래전 은퇴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보통 이렇다.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나신다.

먼저 일어나신 분이 커피를 내리고,

가벼운 키스 후 “좋은 아침, 잘 잤어?”로 인사를 나누신다.


할아버지는 페이스트리와 블루베리, 딸기 같은 베리류로 아침을 드시고,

할머니는 요거트나 계란, 때로는 오트밀을 선택하신다.

각자 차려 먹는 아침이지만, 늘 하루의 계획을 나누신다.


할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씩 고양이 아다카스의 간식을 사러 월마트에 가시고,

할머니는 필요한 식료품을 종이에 적어 거의 매일 장을 보러 가신다.


나는 디스코의 간식과 화장실 모래를 살 땐 할아버지와,

그 외의 날엔 할머니와 함께 외출했다.


점심도 각자 간단히 챙겨 드시고,

식사 전후로 할아버지는 신문을, 할머니는 책을 읽으신다.


저녁 6시엔 어김없이 한 시간 동안 PBS 뉴스를 함께 시청하시고 ,

7시 무렵부터 저녁식사를 준비하신다.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정치, 사회,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는 대체로 한 시간쯤 이어진다.


그 후엔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밤 11시 즈음 취침하신다.


할아버지는 컴퓨터로 웹서핑을 하시고, 가끔 정원을 가꾸신다.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 필라테스와 독서 모임에 참여하신다.


또 한두 번은 함께 미술관이나 외식을 즐기신다.


두 분이 매일 잊지 않고 확인하시는 것이 하나 있었다.

며칠 전 사온 배가 얼마나 익었는지,

오늘 저녁 샐러드에 넣을 수 있을지를 점검하는 일.

배의 빛깔과 촉감을 함께 살피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잘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은 의식 같기도 했다.


저녁 요리는 주로 할머니가 하셨지만,

샐러드를 만들고 음식에 어울릴 와인을 고르는 일은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할아버지가 골라주신 와인을 홀짝이며 두 분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은퇴 체험 중인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물론 디스코와 함께 하는 시간 역시 언제나 즐거웠다.


그럼에도 남편이 그리운 마음,

USDA (미국 농무부)에서 디스코의 건강증명서를 제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때때로 감추기 어려웠다.


하루하루 조금씩 익어가는 배를 보며,

디스코 아빠를 만나러 싱가포르로 향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익어가는 배와 함께 기다림의 시간도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PXL_20251018_052203140~3.jpg 익어가는 배와 함께 기다림의 시간도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디스코 싱여행기 7화가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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