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차곡차곡
나는 불안이 많은 편이다.
불안해 보이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 노력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특히나 불안이 가시기 전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 불안들은 차곡차곡 쌓여 결국 주변에까지 새어 나온다.
디스코 싱여행기 5화에는 나의 이런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집에서 시조부모님 댁으로 가는 네 시간 동안,
데이지는 울음을 멈췄다가도
시스코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시 울곤 했다.
그렇다. 시스코는 차량 이동 내내 울었다.
‘그래도 마지막 30분만큼은 조용했으니,
비행 중엔 울지 않는 시간이 더 많겠지?’
비행기에 함께 타는 분들께 아이들이 민폐가 되지 않길 바라는,
엄마의 노파심에 섞인 희망이었다.
고양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고양이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이 매우 강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시조부모님 댁엔 그 집의 터줏대감, 고양이 ‘아다카스’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악질을 하는
성깔 있는 고양이 ‘아다카스’.
앞발톱도 없는, 순하디 순한 시스코와 데이지가
아다카스 앞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고양이 발톱 제거가 허용되던 시절,
전 집사가 디스코 - 고양이 아들 시스코와 고양이 딸 데이지의 발톱을 제거했다고 들었다.)
다행히 할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이 머물 방을 마련해 주셨다.
방 가운데에는 디스코가 편히 쉴 수 있는 큰 침대가 놓여 있었고,
붙박이장 안에는 고양이용 화장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디스코를 캐리어에서 꺼내며 말했다.
“자, 여기가 우리가 열흘간 지낼 곳이야.”
시스코와 데이지는 캐리어 밖으로 나오자마자 방안 구석구석을 탐색하기에 바빴다.
내 불안은 아마도 이때부터,
아니 매디슨을 떠나던 차량 안에서부터?
아니, 그보다도 훨씬 전,
이주를 결정했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생활의 터전으로 옮겨온 이 날,
비로소 그 불안을 또렷이 인지하게 되었다.
불안증 증폭 1단계: 아다카스의 공격
고양이들은 후각에 매우 예민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는 걸 냄새로 감지한다.
아다카스는 디스코가 있는 방에서 나오는 심상치 않은 냄새를 맡고,
문 아래 틈으로 코를 들이밀었다.
이 일생일대의 흥미로운 사건을 호기심 많은 데이지가 놓칠 리 없다.
데이지는 건너편으로 들어온 아다카스의 코를 향해 앞발을 뻗었다.
문 아래 틈에서 마주친 아다카스의 코와 데이지의 앞발.
긴장 최고조의 순간.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도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예상대로, 아다카스는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역대급 하악질을 날렸다.
데이지의 앞발이 겁에 질려 파르르 떨렸다.
나는 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가 데이지를 안았다.
“무서웠지?”
데이지: “엄마, 방금 그거 뭐였어요?”
시스코도 하악질 소리를 들었는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얘들아, 엄마가 지켜 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남편과 상의 끝에, 아다카스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여행 가방을 문 앞에 가로로 놓았다.
방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가방을 넘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낯선 고양이들의 조우를 막는 데엔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불안증 증폭 2단계: 아빠의 출국 - 남편 없는 시조부모님 댁, 나 홀로 아이들과 함께.
8월 26일 화요일.
디스코 아빠가 떠나는 날이었다.
출국하는 날 아침까지, 남편은 잠시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조부모님 댁으로 올 때 타고 온 자동차도 출국 하루 전날에서야 팔렸으니 말이다.
그나마 그렇게 막판에라도 해결이 된 게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남편이 느낄 중압감을 알기에 투정은 잠시 미뤄 두었다.
“비행기에서 아무 생각 말고 좀 쉬어.”
“고양이들 혼자 돌보게 해서 미안해.”
우리는 공항에서 서로의 붉어진 눈을 마주 보며, 눈물을 삼켰다.
불안증 증폭 3단계: USDA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미국 농무부)
남편의 출국 다음 날,
할아버지께서 아다카스가 다니는 동물병원에 나와 디스코를 데려다주셨다.
싱가포르로 가져갈 마지막 건강증명서 (Step 9, Step 10 참조)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Step 9.
Between 2 and 7 days of export, send pet for external & internal parasite treatments and request treating vet to complete Sections I to III of the veterinary certificate.
9단계.
출국 2~7일 전에 반려동물을 외부 및 내부 기생충 처치를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담당 수의사에게 수의학 증명서(Veterinary Certificate)의 I~III 섹션을 작성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Step 10.
Within 7 days of export, request the exporting country’s official government veterinarian to endorse Section IV of the same veterinary certificate.
10단계.
출국 7일 이내에, 반출국(출국 국가)의 공식 정부 수의사에게 동일한 수의학 증명서의 IV 섹션을 인증(서명 및 확인) 받습니다.
병원 예약을 하며 미리 9단계와 10단계의 절차를 설명했고,
병원 측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디스코의 기생충 처치와 양호한 건강상태를 확인받았다.
아이들의 건강증명서를 완성하려면
‘USDA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gulture, 미국 농무부)’의 인증이 반드시 필요했다.
전자 인증은 불가하고, 실제 도장이 찍힌 서류만 인정되기 때문에,
우편으로 서류를 보내야 했다.
문제는, 나와 디스코의 출국 전날인 월요일이 노동절 공휴일이었다는 것.
병원 측은 그전까지 USDA에서 서류를 받을 수 있도록
가장 빠른 우편으로 서류를 보냈다.
보통 2~3일이 걸린다니, 금요일에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토요일 오전까지만 도착해도 문제없는 상황이었다.
토요일 오전, 동물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서류가 도착했나?’ 반쯤 들뜬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이런~!
서류에 작은 오류가 있어 USDA가 승인을 보류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오류인 건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병원 측이 끝까지 우리를 도와줄 수 있도록, 비위를 건드려선 안 될 것 같았다.
피부를 뚫고 나올 것만 같은 내 심장을 다독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병원 측은 USDA가 우리 출국 예정일인 화요일에 업무를 재개하니,
서류를 다시 제출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고 하면서,
가능하다면 출발일을 미루는 게 좋겠다고 했다.
사실,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함께 여행을 떠날 시어머니와 이모님께 여행 날짜를 조정할 수 있는지 여쭸다.
디스코의 건강 검진일을 9월 4일로,
출국일을 9월 10일로 변경했다.
그날 밤, 시어머니가 시할머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 “괜찮은 거겠죠? 너무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시할머니: “걱정 마, 우리가 잘 돌볼게.”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나라들은 동물 건강증명서를 한 장으로 처리하지만,
싱가포르는 개체별로 각각의 증명서를 필요로 해서 인증이 거부된 것이었다.
병원 측을 탓할 수 없던 상황,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를 괴롭힌 건, ‘내 불안을 시댁 식구들이 다 느끼셨구나’하는 부끄러움이었다.
“시스코, 데이지, 엄마가 불안해해서 미안해.
그래도 우리 같이 있으니, 괜찮은 거지?”
디스코 싱여행기 6화가 곧 이어집니다.
도대체 시스코와 데이지는 언제 싱가포르로 출발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