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울어?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8년을 살았다.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 15년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도시다.
그것만으로도 특별하지만,
매디슨은 우리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곳이라 이곳을 떠난다는 결정이 쉽진 않았다.
매디슨은 ‘Lake Mendota (멘도타 호수)’와 ‘Lake Monona (모노나 호수)’ 사이의 지협을 비롯해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낭만을 만들어 주는 도시였다.
나에게는 인종 차별과 언어 장벽을 극복하며
교사라는 커리어를 시작한 도전의 도시,
남편에게는 다리 골절과 기도 폐색을 이겨내며
학업을 마친 희망의 도시였다.
우리는 우리에게 시련과 성장을 안겨준 이 도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학업을 마친 남편의 첫 직장은 재택근무가 가능했다.
우리는 당연히 매디슨에 머물기로 했다.
단,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집을 찾아야 했는데,
매디슨의 월세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남편과 파트타임 교사로 일하던 나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월세를 내고 나면 없어지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때까지 우리는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 계획이 없었기에
주택 구매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차라리 집을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첫 주택 구매자에게 주는
매디슨 시 보조금을 받으면 작은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우리 부부 명의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매달 할부금을 내야 했지만.
그리고 그 이듬해, 고양이 아들 시스코와 고양이 딸 데이지, '디스코'의 부모가 되었다.
우리가 산 집으로 이사한 첫날,
남편과 나는 기쁨으로 자축하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 집이 우리의 첫 집이지만, 마지막 집은 아닐 거야.
여기에서 행복하겠지만, 안주하진 않을 거야.”
남편이 싱가포르로 이직하면서,
우리는 이 약속을 생각보다 빨리 지키게 됐다.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우리 부부이긴 하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미지수였다.
언제든 매디슨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집을 월세로 내놓기로 했다.
집 관리자 섭외까지 마친 후,
우리가 미심쩍었던 부분을 확인하려 매디슨 시 주택 부서에 연락을 했는데,
그 전화 통화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왔다.
우리가 집을 구매할 때 받은 보조금으로 인해 집의 일부가 도시 소유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약속한 금액을 모두 지불하기 전까지는 집을 세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맙소사!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는 집을 팔기로 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앞당겨하는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이 결정은 우리가 싱가포르로 떠나기 일주일 전,
시조부모님 댁에 들르기 바로 직전에 내려진 것이어서,
심란함은 배가 되었다.
다행히 시부모님과 막내 시동생 부부가 한 번씩 들러 짐 정리를 도와주었는데,
우리에게 정말 큰 위안이 되었다.
집을 완전히 비우기 전, 홍보용 사진을 찍었다.
온라인에서 우리 집을 보는 기분은 참 묘했다.
해외 이사 전문 업체를 통해 싱가포르로 짐을 보냈다.
디스코 (시스코 + 데이지)의 캣타워와 자동급식기도 함께 보냈다.
남은 물건들을 야드 세일과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를 통해 팔았다.
매디슨에서 우리가 좋아하던 음식점들과 하이킹 코스에 가보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나누었다.
몸은 바빴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자꾸 허전했다.
집 매매를 위한 첫 번째 오픈 하우스 날짜가 정해졌는데,
하필 매디슨을 떠나는 날이었다.
그전까진 집을 완전히 비우고 말끔하게 청소해야 했다.
시조부모님 댁으로 출발하는 날의 아침,
우리는 성공적인 오픈 하우스를 위해 마지막 청소를 마쳤다.
평생 가장 바쁜 아침이었다.
시스코와 데이지를 각각 캐리어에 넣고 차 문을 닫았다.
차만 타면 우는 시스코가 또 울기 시작했다.
“자, 출발!”
나는 운전대를 잡은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남편을 보니,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평소 본인은 ‘남자 중에 남자’라며
우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데…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참고 있던 그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시스코가 울음을 멈췄다.
시스코: “뭐지? 아빠 울어?”
데이지: “그래? 어떻게…”
“좀 있다가 갈까?”
나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야, 괜찮아. 가야지.”
남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정말 좀 있다가 가도 돼.”
“그냥... 기분이 이상해. 감정이 복받치는 거 같아. 뭐라고 설명이 힘들다.”
나는 남편이 안정되길 기다리는 동안 디스코에게 말했다.
“시스코, 데이지, 여기서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사시는 미네소타까지 4시간 정도 걸려.
다음에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 탈 때는 훨씬 더 오래가야 해.
오늘 여행이 좋은 연습이 될 거야.”
잠시 후, 시스코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데이지도 따라 울었다.
‘디스코 싱여행기’, 5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