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싱여행기 10화 - 고양이 검역소

마음은 검역이 안 되나요?

by 붱draw

2025년 9월 11일 밤 11시 40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디스코(고양이 아들 시스코와 고양이 딸 데이지)는 밖으로 나가기 전

‘검역’을 통과해야 했다.


가장 빠른 예약 시간이 다음날 오전 9시였으므로,

그때까지 디스코는 공항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머물 곳이 하필 분실물 센터(Lost and Found)였다.


이 휑한 공간에 아이들만 두고 가기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휑한 공간에 아이들만 두고 가기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함께 온 시어머니와 이모님은 마중 나온 남편과 먼저 집으로 가셨다.

나는 디스코의 서류와 간식을 챙겨 공항에 남았다.




새벽 1시가 넘어 분실물 센터에서 서류를 작성했다.

직원은 비행기 티켓을 꼭 챙기라고 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반려동물은 분실물 센터에서 바로 검역소로 옮겨지고,

보호자는 따로 이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역소 위치를 찾아보니 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였다.

‘왜 검역소가 당연히 공항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나의 안일함을 탓했다.


아이들이 든 캐리어가 보이는 곳에 앉았다.

멀찍이 근무 중인 직원이 디스코를 한 번씩 들여다보는 모습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같이 살기 위해 감행한 여행이지만,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서류를 준비할 때도, 시조부모님 댁에서 출발일을 기다릴 때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니까’라며 마음을 다잡았었다.


입양 당시 데이지는 여덟 살, 시스코는 아홉 살이었다.

이제 아홉 살과 열 살이 된 디스코,

고양이로서는 노령이지만 내게는 여전히 아기 같다.

초보 엄마의 미숙함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기다림으로 가득한 새벽,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직원들이 아이들을 살펴보고 간식도 줄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분에,

두세 시간마다 분실물 센터를 찾아가 아이들을 보았다.

디스코는 울다 지쳤는지 매번 잠들어 있었다.


“디스코, 검역에서 너희 마음까지 알아봐 줄 순 없을까?

엄마는 너희 마음을 알고 싶어.”


디스코: “엄마, 시끄러워요. 우리 자고 있잖아요.”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해 주길 바랐다.


새벽 세 시까지 안부를 묻는 남편에게 “제발 자, 나도 잘게.”라며 메시지를 보냈지만,

결국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분실물 센터에서 디스코의 캐리어가 옮겨지는 걸 보고

나도 공항 도착장으로 나갔다.


아침 7시, 파리바게트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Grab’ 앱을 켰다.

하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차량 예약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일반 택시를 탔다.


운전석은 오른쪽, 차선은 왼쪽.

싱가포르에 와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주는 기사님 덕분에

싱가포르의 첫인상이 조금 더 밝게 느껴졌다.


검역소로 들어가는 길목에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소 창구에는 각국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대기표를 들고 줄 서 있었다.


기사님이 말했다.

“저기서 출입증 받아야 해요.”


여권을 창구에 내밀자 직원이 비행기 티켓을 요청했다.

분실물 센터 직원이 왜 티켓을 챙기라고 했는지 이해됐다.


“여권은 저희가 보관합니다. 검역소 업무 마치면 찾아가세요.”

그리고는 여권 사진면을 펼쳐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안으로 더 들어가자
군인 복장의 남성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아, 이래서 검문소 창구에서 여권 사진을 찍으라고 했던 거구나.’


그리고 그제야 Grab으로 차량 예약이 안 됐던 이유도 알게 됐다.

검역소는 등록된 차량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검역소 오픈까지 시간이 남았다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에 내려 주셨다.

끝까지 친절한 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이어져 얼떨떨했지만,

디스코 생각은 계속되었다.


‘디스코는 지금쯤 어디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싱가포르 심카드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남편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일단 검역을 잘 끝내자.'


오전 8시 반, 닫힌 검역소 철문 앞을 서성였다.


그때 하얀 밴이 지나가며 운전자가 물었다.

“검역 기다리세요?”


“네.”


“정확히 9시에 문 열어요. 저기 버스 정류장에서 잠깐 기다리세요.”

짧지만 따뜻한 음성이었다.


기다리는 30분이 30년 같았다.


굳게 철문이 닫혀있던 동식물 검역소


오전 9시. 철문이 열렸다.

입구에서 어항을 청소하던 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조금 전 그 하얀 밴의 운전자가 다가왔다.


“검역 예약하셨죠?”


‘이 분이 검역관이구나.’


그가 서류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최종 건강검진 날짜가 9월 4일이네요. 오늘이 12일이니까 일주일이 넘었어요.”


나는 미리 준비한 답을 했다.

“여기 보시면 ‘수출일 기준 7일 이내’라고 되어 있어요.

저희 출국일은 10일이었어요.”


검역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다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그가 물었다.

“고양이들 만나보시겠어요?”


“네!”




문이 열리고, 낯익은 캐리어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시스코! 데이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그 안에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핑 돌았다.


시스코의 꼬리는 축 처져 있었고,

데이지의 핑크 코는 새빨갰다.


시스코: “아… 기운 없어.”

데이지: “날 잡아 잡숴~”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우리 집에 같이 가자.”




검역관이 물었다.

“택시 필요하세요?”


“네. 그리고 전화 한 통 해도 될까요?”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방금 검역 끝났어. 이제 택시 타고 갈 거야.”


“나 여기 있어!”


“어디?”


“검문소 앞이야. 비행기 티켓이 없어서 안에는 못 들어간대.”


“검문소 앞?”


검역관은 통화를 이어받았다.

“왓츠앱 쓰시죠? 제가 비디오로 전화드릴게요.”


그는 영상통화로 남편에게 검문소에서 기다리기 좋은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남편과 통화를 마친 그는 택시를 부르며 말했다.

“내릴 때 요금만 내시면 됩니다.”


양이들 입국 날짜에 잠시 딴지를 걸었던 건,

단지 자신의 일을 정확히 하려던 것뿐이었다.

그 역시 친절한 사람이었다.


‘싱가포르에는 정말 친절한 사람이 많구나!’

싱가포르가 점점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디스코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멀찍이 관문소 앞에 서 있는 남편이 보였다.




디스코 싱여행기 11화에서는

드디어 집으로 향하는 디스코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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