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소득 없이 그리기만 해도 될까?

잠시 빌린 믿음

by 붱draw

정말 시작이 반인 걸까.


섬네일 스케치 하나를 시작하고 나니 작업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적게는 하루 한 장면에서 많게는 대여섯 장면까지, 작은 네모 칸 안에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어떤 장면은 몇 번씩 지우고 다시 그렸고, 어떤 장면은 단번에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종이 위의 작은 장면들을 채워 나갔다.


경력이 쌓여 가면 조금 더 수월해질까? 삽화 작업 초보자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잘하고 싶어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마음을 내려놓고, 선 하나라도 그려보자고, 단 5분이라도 그려보자는 다짐을 실천하자, 불가능했던 일이 조금씩 가능해졌다. 장면의 뼈대가 되는 인물과 사물의 형태를 잡기 위해 참고 자료를 찾는 방법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필요할 경우 직접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남편에게 “잠깐만 이렇게 있어 봐.” 라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했다. 깜짝 놀라는 표정과 손동작, 쪼그려 앉아 있는 포즈 등을 부탁했다. 고맙게도 남편은 묵묵히 모델이 되어 주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묵묵히 모델이 되어 주었다.


‘진작 이렇게 해 볼걸.’
‘이제라도 이렇게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이 두 생각을 번갈아가며 조금씩 작업을 이어갔다.


이렇게 섬네일로 스토리를 끝까지 그려보고, 이제 색을 입혀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

…라고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대로 해 보고자 하는 동화 일러스트 작가 꿈나무에게 작업의 세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 날, 남편이 직장 행사에서 추첨으로 경품을 받아왔다. 10달러짜리 바우처였다.


“와~ 당신 능력자다~ 운도 좋고!”라고 남편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뒤돌아서는 마음 한편이 아렸다. 내 통장에 들어오는 수입은 모두 남편에게서 온다는 사실이 나도 모르게 상기됐기 때문이다. 내 작업을 위해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는 바로 그 남편에게서.


그 순간 마음속에서 다시 잡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 지금처럼 소득 없이 그리기만 해도 되는 걸까?’
‘정말 괜찮은 건가?’


돈 벌러 나가는 남편이 심지어 경품까지 받아온 것에 나는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부부는 팀, 팀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 누가 점수를 매기지는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서로의 균형이 맞는지 확인을 하곤 한다.


자존감이나 자기 효능감을 지키고 싶은 걸까?

남편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일까?
아니면 그냥 자격지심일까?

아마도 여러 가지가 섞인 복합적인 감정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남편은 내가 이 작업으로 언젠가 수입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러니 당분간은 그의 믿음과 희망을 조금 빌려 쓰기로 해 보자.


그래서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이 시간을 나에게 하는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일곱 번째 그림 실험 보고서>


실험 제목: 소득 없이 지속적으로 그림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가?


실험 목적: 경제적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창작 활동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찾기 위함.


실험 계기: 남편이 직장 행사에서 받은 10달러 경품을 계기로, 현재 나의 통장에 들어오는 수입이 모두 남편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재인식했다. 그 순간, ‘소득 없이 그리기만 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맞닥뜨렸다.


실험 방법:


1. 작업 지속
섬네일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이어가며, 하루 한 장면이라도 꾸준히 작업 흐름을 유지함.


2. 감정 관찰

작업 과정에서 느끼는 자격지심, 미안함, 고마움 등의 감정을 기록하고 스스로 해석함.

경제적 현실과 창작 활동 사이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을 관찰.


3. 관점 전환 시도

‘소득 없는 시간’ 대신 ‘창작에 대한 투자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마음가짐을 전환함.

실험 가설: 경제적 성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 내면적 동기를 활용하면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실험 결과(현재 단계):

- 작업 자체는 이어지고 있음.
- 섬네일 스케치를 이어가며 장면 구성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음.

- 경제적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자격지심, 미안함, 고마움 등 복합적 감정이 동시에 발생함.

- 관점 전환 시도가 감정의 부정적 영향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지만,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 됨.


실험 소감: 창작 과정에는 기술적인 연습뿐만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연습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보다 주변 사람의 믿음을 잠시 빌려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과제:

- 섬네일 스케치 작업을 계속 이어가며 장면 구성 감각을 강화하기
- 그림 작업이 실제 결과물로 이어질 가능성을 탐색하기

-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변화를 꾸준히 기록하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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