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의 분위기 바꾸기
새벽에 받은 과제
어느 새벽, 내가 그릴 동화 원고를 다시 읽어 보았다. 지난번 읽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색채들이 글 안에서 빛나고 있는 것 같아 눈이 부셨다. 마치 세상에 있는 색들을 한데 모아 책장 안에 마법처럼 담아야 할 것만 같았다. 단순히 컬러감이 살아 있는 것을 넘어, 엉뚱하고 발랄한 느낌까지 표현해야 할 듯한 압도감에 손끝이 찌릿해졌다. 형태 역시 평범해서는 안 될 듯했다. 다시 두통이 시작됐다. 평소 내가 그리던 그림의 색감과 형태는 그에 비해 너무 정적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연습해야 할까?’
계속되는 질문
앞 글에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서로 상호보완적이라고 썼지만, 같은 창작 영역이라도 두 가지는 엄연히 형식이 다르다.
사과와 당근의 궁합이 좋다고 하여 나는 가끔 두 가지를 섞어 주스를 만들어 마신다. 서로 다른 영양소가 보완되어 함께 먹으면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가 당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과는 과일이고 당근은 채소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도 비슷하다. 둘 다 창작 영역이지만 글은 글자로, 그림은 이미지로 드러난다. 같은 것을 표현한다 해도 그 결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글로 써도 결국은 그림으로 그려내야 한다.
그릴 방향을 잡기 위해 나는 평소 습관처럼 먼저 써 보기로 했다.
자연 본연의 모습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 조화를 이루며,
율동감이 느껴지도록.
꽉 채우기보다 슬쩍슬쩍 보이는 여유 공간,
그 공간을 아이들이 상상력이 채우는 그림.
그날 새벽에 읽은 이야기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지에 대해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다시 질문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도대체 이걸 어떻게 그려야 할까?’
시너지 효과
싱가포르의 차원이 다른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피부병을 얻었다. 모기에 물린 자리는 염증으로 부어올랐고, 곧 사라질 줄 알았던 땀띠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여러 병원을 다녀보고 침도 맞아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전문의 진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찾은 동네 병원에서 염증 약과 알레르기 약을 함께 처방받았다. 어차피 곧 전문의를 만날 예정이니 그전까지 증상이 심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두 약을 병행해 먹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이삼일 만에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뭐가 증상을 나아지게 만든 걸까? 염증약 때문일까, 알레르기 약 때문일까?’로 시작된 생각은
‘무엇 때문에 나았는지가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나아지고 있다는 거잖아.’로 끝났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 경험을 그림 연습에도 적용해 보기로 했다. 여러 방법을 동시에 시도하면, 어느 하나 때문이라기보다 서로의 시너지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서.
삽화 실력을 키우는 두 가지 연습
비록 지금의 내 그림이 원하는 형태와 색채를 충분히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연습을 통해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품었다.
효율적인 삽화 연습 방법을 찾아보다가 여러 방법 중 두 가지를 골라 실천했다.
1. 스타일 모작과 변형 (Master Study & Style Variation)
좋아하는 작가의 색, 선, 구도를 분석하며 따라 그린 뒤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해 보는 방법이다.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분석하고 자신의 시선을 덧입히는 과정이다.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가는 데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한다.
2. 썸네일 스케치와 연출 연습 (Thumbnail Sketching)
동화책은 한 장의 그림보다 '흐름'이 중요하다.
작게 사각형을 여러 개 그려 놓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아주 단순한 선으로만 표현해 본다.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하고 인물의 배치, 시점, 빛의 방향 같은 요소만 빠르게 스케치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한 권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적 리듬감을 익힐 수 있다.
이제야 쓰는 손에서 그리는 손으로 옮겨 왔다.
사실 이 두 가지 방법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다. 다만 시동을 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반은 왔으니, 이제 남은 반을 채워 나가면 된다.
실험 제목: 두 가지 연습법으로 내 그림의 분위기 바꾸기
실험 목적: 정적인 기존 그림 스타일에서 벗어나 동화에 어울리는 더 자유롭고 발랄한 분위기의 그림을 찾기 위함.
실험 계기: 동화 원고를 다시 읽으며 기존 스타일로는 이야기 속 색채와 움직임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낌.
실험 방법
1. 스타일 모작과 변형
좋아하는 삽화가의 그림을 분석하며 모작한 뒤 나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보기.
2. 썸네일 스케치 연습
작은 프레임을 여러 개 만들어 이야기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스케치.
실험 가설: 두 가지 연습을 동시에 진행하면 어느 하나의 방법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시너지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실험 결과(초기 단계): 아직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음. 장면 구성과 색을 더 자유롭게 시도하길 바람.
실험 소감: 때로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실험 과제:
1. 모작한 스타일을 점점 더 나만의 그림으로 변형하기
2. 썸네일 스케치 더 많이 시도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