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잘 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싱가포르 시간 새벽 5시,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오늘 새벽 온라인 그림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였다. 평소 의지가 되던 분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쾌차를 바라며 설 연휴 후에 뵙겠다고 답했다. ‘오늘 혼자일 수도 있겠는데?’ 그리 스친 생각은 곧 현실이 됐다. 진짜 혼자였다. 5분, 10분이 지나도 모니터에 보이는 건 내 손뿐이었다.
좀 웃겼고, 약간 멋쩍기도 했다. 그래도 그림을 그렸다. 새벽에 일어난 나를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실제의 나와 화면 속의 손이 다른 공간에서 함께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좋았다. 아무도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 그 시간을 상징적으로 남기기로 했다. 혼자 그리는 자유로움,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해 두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임 초반 서로의 열정을 나누던 때가 그리웠다. 이 모임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했다. 잘 그려진 그림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엔 잘 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입이 떡 벌어지는 작품들, 멋지게 자기 작업을 소개하는 사람들. 엄청난 내공을 쌓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
금요일 오후를 그렇게 흘려보내고, 모임을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그림 연습에 몰두하지 못했다. 그림 실험 연재 4회 만에 슬럼프라니. (아직 제대로 이뤄낸 것도 없는데 ‘슬럼프’라는 단어를 쓰기 조차 민망하다. 그렇다고 ‘부진’이나 ‘의욕 상실’이라고 하자니 상황에 맞지 않아 그냥 '슬럼프'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기차에 올라타면 언젠가 내 자리도 생기지 않을까? 한참 서서 가야 할 수도 있다. 중간에 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다 보면 빈자리 많은 새 기차로 갈아탈 수도 있겠지. 지레 겁먹고 올라타지 않으면 나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여행을 하며 여행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그나저나… 기차 티켓은 어떻게 사지?'
티켓을 사는 일환으로 나는 ‘슬럼프 극복 5단계’를 설계해 보기로 했다.
1단계: 쉬는 시간도 성장의 일부, 잠시 멈추고 다른 경험하기
비교하며 마음이 무거워질 때, 잠시 그림을 내려놓는다.
음력설 연휴 동안 싱가포르로 여행 온 남편 친구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그림을 쉬었다. 걷고,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오히려 다시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2단계: 비슷한 고민 읽기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님을 확인한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글과 메시지를 읽으며, 지금의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3단계: 글로 먼저 그려본다.
그리는 손이 멈추었을 때는 글로 생각을 풀어본다. 지금 이 글도 그 과정에서 쓰였다. 글로 마음을 적어가다 보면, 막혀 있던 것들이 조금씩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4단계: 작게 시작하기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5분만이라도 손을 움직인다.
손바닥 크기의 종이에 작은 이미지 하나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재도약의 작은 의식이 된다.
5단계: 작은 성과로 스스로를 칭찬하기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 어제의 나와 비교한다.
짧게 그린 그림, 새로운 시도, 작은 실패 모두가 스타일을 발견할 단서라고 믿는다.
위 5단계를 실천한 후, SNS의 멋진 작품들에 예전처럼 위축되지 않는다. 적어도 전보다는 덜하다. 그들의 멋진 작품은 그들이 투자해 온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존경의 마음으로 하트를 누른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참고서처럼 바라본다.
지금도 슬럼프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에 부진이나 의욕 상실의 시기가 온다면, 나는 이 5단계를 떠올릴 것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나만의 회복법이 있듯이.
슬럼프는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과도 같다. 기차에 타기 전, 숨을 고르는 시간. 그림을 그릴 때도, 쉴 때에도 내가 거쳐가는 모든 시간과 감정은 결국 나의 색이 된다.
실험 제목: 새벽 그림 모임과 슬럼프 극복 5단계 실천
도전 과제: 그림 슬럼프를 느낄 때 5단계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그림을 시작하기
목적: 슬럼프 상황에서 그림을 지속할 수 있는 마음과 루틴 회복, 작은 실천을 통해 스타일 탐색과 실력 향상으로 연결
방법 및 시도: 잠시 멈추고 다른 경험 - 여행과 산책으로 의도적 중단
비슷한 고민 읽기 - 온라인 글과 메시지를 통해 감정 정상화
글쓰기로 마음 정리
5분 그림으로 작게 시작하기
작은 성과 칭찬: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격려
성과: 비교로 인한 마음의 무거움 완화. 혼자 그리는 시간의 자유와 즐거움 재확인. 작은 시도를 통해 그림 활동 재개. 스타일 탐색과 실력 점검의 동기 회복.
느낀 점: 슬럼프는 대기 시간과도 같다. 작은 실천이 결국 기차 티켓이 된다. 나만의 의식과 방법으로 그림을 지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