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순만 Nov 08. 2023

김수영의 시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1921.-1968)의 시는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뭔지 모르는 강인함을 준다.
휘어지면서도 휘어지지 않고 강인하게 다시 일어서는 풀잎, 

월트 휘트만의 시집 <Leaves of Grass, 1855>도 읽어볼 만하다.

반복어가 이어지지만 질리지 않고, 사소함에서 신비스러운 비밀을 지닌 것 같다.

그의 시 <폭포>를 보면 김수영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의 시 <풀> 해설

'풀'은 겉으론 연약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민중을 상징하는 존재로 '바람(독재 권력)'에 흔들리며 눕혀지고 울지만 나중에는 바람보다 빨리 눕고(바람을 피하는 모습)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대상입니다. 비록 시에서 내내 바람은 불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발목까지 발밑까지 누워야 하고 바람보다 늦게 눕는 경우도 있지만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날은 계속 흐리고 풀은 계속 눕지만 풀(민중들)은 결국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뜨거운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