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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Nov 19. 2023

사후

나는 어떻게 떠나는 걸까

나는 누워 있겠지.

(숱한 잠들은 그날의 연습일지도 몰라)


영원히 누워 있다 보면

뼈가 부스러지고

골수에 수분이 날아가고

얼굴도 형체를 잃어버린

유골이 되겠지.


아니,

뜨거운 용광로에서

평생 마셔둔 물도 증발시키고

살점이 열정처럼 불타오르고

지탱하던 연골도

골수도 증발하면서

하얀 재가 되겠지


살아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겠지

형체를 잃어버린

가루가 되어버린

그래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


나는 어디로 날려갈까

바람에 흔적 없이 날려갈까

어느 흙 속에 묻힐까

아니면

기억의 언덕 넘어서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

망각의 강을 건너가겠지


기억이 사라지고

꿈이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슬픔도 사라지는

그날이 오면

그토록 사랑했던

너는 살아서 나를 어떻게 보내줄까


나의 흔적들을 지워가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연필로 쓴 글을 지우듯 나를 지워야겠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나의 언어도

아껴야겠다

지우기도 힘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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