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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Jan 30. 2021

자식

내가 보고 싶다면 그 사람은 더 보고 싶을 수도.

  딸이 하루 늦게 집에 들어와 야단을 쳤다. 딸은 수줍고 말이 없었다. 방에 들어가면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고교시절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것을 몇달다니다 포기한 적이 있어서 딸이 피아노를 치는 것이 그리 좋았다. 딸에게 중고피아노를 사준 것이 아마 내가 딸에게 가장 잘 한 일이라 생각된다.



  

  3살 때 딸이 잠을 못자고 아이의 플라스틱 의자를 이리저리 옮겼다. 나는 뭐든 아이에게 강요를 하지 않았지만, 아들의 경우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아들에 대한 억지가 있었고, 덜 자유로웠던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이제 팔순, 부모를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고교생 때야 공부에 불을 붙었다. 아버지는 두꺼비 집을 내릴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공부를 하지 말라는 부모 덕에 나는 더 많은 공부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3을 졸업할 때 즈음 나는 더이상 딸을 볼 수 없었다. 생이별이란 존재했고, 나는 벌써 딸을 못본지 4년이 넘었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딸은.  딸도 나를 닮아서 독(毒)한가  한 번 틀어진 사이는 건너갈 수 없고, 건너갈 수 없는 강이 되었다.


  딸을 너무 보고 싶고, 또한 말 무지 않듣는 아들도 보고 싶다. 그러나 그들을 다시 볼 용기가 없다. 같은 땅에 살면서도 볼 수 없는 사이, 이것의 원인도 결과도, 과정도 나는 해석할 수 없다. 아니 알면 알 수록 더 불행할 것 같은 현실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비가 이렇게 보고 싶은데 자식들은 오죽할까?

  

  나는 다짐한다.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아니, 그들은 '죽은 거라고.  세상에 없는 거'라고. 너무 보고 싶으면 가슴이 메이고 멍이든다.

  

  3개월을 나는 처자식을 헤매다녔다.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무너졌다.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은 고통 그 자체다. 날마다 살 부비며 사는 가족이 바로 이혼의 과정이다. 아내는 몇 년을 두고 이혼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혼은 혼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리 만드는 것이다.


  수원시장을 한 나절을 돌았다. 사람을 찾는 일이 어디 쉬운가. 여기도 저기도 어디에도 그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고, 많이 배웠다해도 해결할 수 없고,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어쩌면 가족을 잃은 것은 가장이 가장이 아니라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열심히 산다고 잘 살고 있는 것은 오해이거나 착각이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돈을 많이 모으고,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진 것을 재산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삶의 근원적인 목적은 내 핏줄 내 가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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