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성에 대한 정당과 논리적 근거에 대한 해석의 오류
[강혜근의 고사성어 다시읽기] 자상모순(自相矛盾) :: 대전일보 (daejonilbo.com)
운전면허증이 중요할까? 운전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할까? 운전을 잘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운전자 뿐만 아니라 만약 사고가 났을 때 익명의 사람까지 보호할 수 있다. 만약 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이 운전을 잘하는 사람과 운전면허증이 있지만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 이 둘 중 어떤 사람으 더 좋을까.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타이틀(certificate)가 뭐가 중요한가? 라고 반문하겠지만, 흔히 허준이 현대로 타임슬립(Time Slip)을 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 해도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모순이 따른다. 허준은 운전은 잘 하지만 면허증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계란이 아무리 흰자와 노른자의 내용물이 좋아도, 껍질이 깨어지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껍질도 알맹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
[ * Slip은 원래 '미끄러 지다'라는 뜻으로 'A baby slipped and fell off the cliff.' (아이가 미끄러져 벼랑에서 떨어졌다.)라는 예문을 들 수 있다. ]
질과 양, 사랑과 조건, 실제와 포장, 알맹이와 껍질, 그렇다. 세상은 둘 다 원하고 있다. 알맹이가 있으면 그에 걸맞는 껍질이 있어야 하고, 능력이 있으면 그것에 맞는 지위가 따르고, 그만큼 일을 했으니 응당의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
즉 껍질과 알맹이는 서로 조화로워야 하고 그에 걸맞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는 집만 있고, 사람이 없거나 사람은 있는데 집이 없는 경우가 있다.
어정띠고 모호한 사황이거나 어딘지 모르는 구색이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다. 사회속에서 거지가 수백억의 건물 한 귀퉁이를 차지 하려하면 '거지새끼'라고 하면서 작은 공간도 내어주지 않는다. 어떤 한 사람이 999를 가졌다면 1을 빼앗아서 1000을 채우려는 것과 같다. 이 이야기는 애매성ambiguity에 대한 규명이기에 흑백논리가 아니고 조금은 빛과 어둠의 해석이라기 보다, 실체와 그림자이거나, 형상과 질료,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기표와 기의 등등의 논리적 현상학을 끌어들어야 한다.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의 눈으로,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다르다. 법에 대한 잣대가 다르다.
어떤 여자 상담자가 찾아 온적이 있다. 이 여자는 유부녀인데 애인이 있었다. 남편이 경찰서에 구속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유부녀인 자신이 애인이 생긴 줄 안 남편이 폭력을 행사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어서 여자는 폭력으로 남편을 신고해 버렸다. 여자는 애인과 상담을 하러 온 것인데, 남편이 싫다는 것이 이유다. 어쨋거나 바람피는 여자가 잘 못된 것인가?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잘 못 된 것인가?
도덕 혹은 윤리적 잣대로 분명 여자의 바람은 잘 못 된 것이지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은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학생이 잘 못을 해서 체벌을 한 교사에 대한 평가는 시대 마다 다르다. 학생에게 폭력과 체벌을 행사한 교사는 설령 학생을 훈계하려는 의도가 있었더라도 폭력 교사로 처벌을 받는다. 만일 아이가 물건을 훔쳐서 아버지가 아이 버릇을 고친다고 매를 때렸다면 폭력 아빠로 잡혀가는 것이다.
한 드라마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가 매일 간호를 하는, 아내를 무지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다. 아내는 마지막 소원으로 날자를 정해서 그날 죽여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남편은 그날 아내를 베개로 숨을 못쉬게 하여 죽인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한 아내를 죽이는 것은 물론 안락사mercy killing이라 하겠지만 남편의 행동은 정당한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재판에 서게 된다. 과연 판사라면 우리는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는가.
전쟁에서 적군이 아내에게 자신과 잠을 하룻밤 잔다면 남편을 풀어주겠다고 하면 아내는 그 남자와 잠을 자야 맞는가 거절해야 맞는가. 이 가정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적과의 동침'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내부에 적이 있기 마련이기도 하니까.
다소 이해가 가지 않을 테니만 매일 구타를 하는 남편을 욕하면서도 남편과 성적인 부분에는 중독되어 있다면 이 여자는 남편과 헤어져야 하는가 같이 살아야 하는가.
드라마 <빠담빠담>은 주인공 양강철이 사건의 오해로 인해 12년의 수감생활을 하고 나와서 한 여자에게 얽힌 사랑의 이야기이다. 현빈 주연 <만추>도 주인공이 수년간 수감 생활에서 어머니 장래식 동안 현빈을 만나서 생겨난 이야기 이다. 실제로 이혼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 사람을 바라보는 인식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양상을 지닌다.
진실은 숨겨져야 할까 밝혀져야 할까. 거짓으로 인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아내의 바람으로 폭력을 행사해서 잡혀간 남편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암투병으로 너무도 아파아는 아내의 소원에 따라 아내를 죽인 남편, 우리의 인식은 자기 편리대로 해석하는 경향을 지닌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저버리고 조건을 찾아서 결혼하는 경우를 뭐라고 할 수 없고, 조건은 다 싫고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