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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Feb 25. 2021

아궁이 풍경

유년의 추억을 회상하다

할아버지는 거의 날마다 칼을 갈았다.

숫돌에 물을 적시고

칼에도 적시며

 날에 손가락 끝을

닿아 보면서 베는 정도를 가늠하면서,

그러다가 베이시면 어쩌시려고.


나룻배를 타고

덤장에서 잡아 온 생선들,

이제 닥거리며

몸부림치는 생선의 배를 따려고.


칼 날이 배를 헤집고 나면

핏물에 내장이.

끔찍하고 선명한 잔인함에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물고기 한 마리
죽이는 것조차 겁이 나는데.

무서운 것은 또 있다.

여물을 절단하는 작두,

볏짚을 써는 작두는 팔목을

자를 만큼 끔찍했다.


그 지푸라기를 가득담은 솥단지에

물이 끓어오른다.


장작불에 고구마 던져서
부지깽이로 꺼내먹을 때

무지무지 뜨거워서 바닥에 떨어뜨리곤 했다.


한쪽 귀퉁이가 까맣게 탔어도
노란 알맹이가 고소한 맛을 냈다.


아궁이는 이제 사라졌고
할아버지는 뒷동산 무덤에 누워계신다.
술 한 잔 올리고 절 할 때도
일어나시지 않으신다.

나룻배도 없고 생선도 없고
숫돌에 칼 가는 소리도 나지 않고

대나무 숲에 바람소리가 밤을 흔든다.


적막한 한 밤에 바람은 귀신처럼 불고
집 주위를 에워싼 대나무를 흔들어 댄다
아직도 시골집이 머물면

신이 나올 것 같이 무섭다.

소를 잃어버려서
매 맞을 때는

세상이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듯
나도 먼 어느 날  

어디 누워있으려나.


Inspiration

억지같이 시간이 지나간다. 시간도 속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회전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 용(龍)이라고 한다.  꿈틀거리며 벌거벗은 시간, 그 시간은 화살처럼 순식간에 스쳐지난다. 얼굴에 스쳐 스쳐 얼굴 한 쪽의 볼에 활촉이 스치고 피가 방울지듯. 나는 얼굴을 문지르고 손을 본다. 세월에 피, 선명하지만 흐릿해져버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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