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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Mar 14. 2021

나무가 눕다

산에 나무가 눕다

그만  누워버렸다

버티고 버티던 세상은 이제 그만.

내가 지탱하던

그 모든 것을 게워내고,

동그랗게 안으로 파고드는

나이도 비워내고,

바람이 스쳐 지나면

흘러온 세월도

흘러가는 세월도

흘러갈 세월도

수분이 온전히 모두 빠져나가

영혼마저

자유롭도록,

나는 누워있다.


아주 가벼이 온 세상의

그 무슨 일에

개의치 않고

그 누구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그저 온전히

그 산 어디쯤에서

누워 있고 싶다.


시간이 멈추든

시간이 가든

비가 내리든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 거리든

사계절이

새처럼 날아와 떠나가도

꽃이 피고 지든.


온전히

눕는다. 나무는.


그 숱한 벌레도

이끼도

토끼

다람쥐

뱀도,

온갖 짐승들이

지나는 것도

아랑곳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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