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427-부(父) 아리스톤과 모(母) 펠릭티오네로 명문가에서 출신이며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어머니가 피릴람페스라는 사람과 재혼한다. 플라톤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한 마리 학이 품에 안겼다고 한다. 그 날 소크라테스은 제자인 플라톤을 만난다. 마치 태몽은 연상케 하는 꿈인 듯 싶다. B.C 399-소크라테스 처형,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정치가로서의 꿈은 좌절되었다. 소크라테의 죽음은 궤변론자sophist에 의한 말장난이었다. 이로 인해 플라톤은 긴 여행을 떠난다. B.C 387-이탈리아 시칠리아, 사라쿠사를 여행하며 디온을 만나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접한다.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었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를 얻어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한다. B.C 357- 디오니시오스 2세의 간청을 받자 망설이던 끝에 다시 시켈리아로 가서 이상 정치를 펴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1년 만에 귀국하여 〈법률〉 등 몇 개의 저서를 더 쓴 뒤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
한 사람의 얼굴에는 사람의 운명과 생애가 있다. 인상학(physiognomy)에서는 한 사람의 살아왔던 생애를 바탕으로 살아갈 미래를 예언한다. 사진이나 조각 또한 그 사람의 한 순간의 얼굴을 포작한 것이다. 상기 석상에서 유추를 해보면, 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 Socrates,B.C 470 – B.C. 399.5.7)는 예수, 석가,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이로 불린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석공소를 운영했고,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였다. 석공소에서 망치질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소크라테스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석상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이다. 다소 우악스러운 산적 같은 얼굴, 자기고집이 많으나 많은 사람들을 문제를 해결해줄 듯한 얼굴이다. 플라톤은 전생애에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사랑한다. 이런 면에서 플라톤은스승에 대한 정신적인 사랑으로플라토닉 러브가 존재한 듯 싶다. 왼쪽에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고 오른쪽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의 4복음서(《소크라테스의 변론》, 《프로타고라스》, 《파이돈》, 《향연》) 중의 하나로 그의 초기 대화편(對話篇)이다. 기원전 399년 부당한 죄상으로 피소된 소크라테스의 법정(法廷) 변론이다. “신의 지(知)에 대해서는 무지와 다름없으므로, 진정한 앎, 즉 진지(眞知)를 사랑하고 신체나 재산보다 의식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지(知)에 대한 사랑은 인간 행복의 열쇠이며,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서(書)’로 플라톤이 심혈을 기울인 저작이다.
《파이돈》(고대 그리스어: Φαίδων)
영혼은 육체라는 침침한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이므로 진리를 좀처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 참다운 지(知)를 사랑하는 자(철학자)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육체를 정화하여 영혼의 감옥이라 할 만한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즉 살면서 죽음을 행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었을 때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서 플라톤은 영혼의 불사(不死)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데아의 생각을 끌어낸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 ~ 1825년)-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시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란 그림에서 침대 가운데에서 앉아 있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플라톤은 앞에서 상심한 채 늙은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병으로 아파하고 괴로워 하는 사람보다 아픔을 지켜보는 사람이 더 힘겨울 수 있듯이 독배를 마시고 죽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괴로워 하는 사람이 플라톤인 듯 하다.
Ⅳ. 플라톤의 정치사상
1. 사상
철인 정치론으로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옹호하고, 플라톤의 저술 『국가론』은 지식과 계몽에서 사회적 진보에 기반이 되는 지성인을 강조한다. (참조. 세계정치사상사, 정종호 편저, p.88)
2. 국가사회기본 틀
1) 이념
물질의 필요는 상호의존적인 것으로 분업화를 통해 불가피한 상호교환을 해야 한다. 직능적 전문화를 통해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구분되며, 통치계급과 방위계급으로 본성과 선천적 소질에 따라 ‘기능화’와 ‘능률화’를 추구하며, 국가정의에 입각한 통치, 방위, 서민의 세 계급이 각자의 소임을 올바로 수향하는 것 자체가 정의이다.
2) 규모
국가개념에서 완전 자급 자족체 일수는 없으며 대외무역의 불가피성이 있다. 상호의존적 분업체계로 무역(貿易)을 구상하면서 전쟁을 대비한 방위군사력의 육성문제를 다루고 있다.
3. 제영역의 구조적 특성들
1)정치분야
5단계의 정체(政體)로 ‘귀족정,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참주정’을 다루고 있다. 인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가는 상황이 진행되면서 카리스마적인 독제를 선택하게 되고 결국, 폭정을 하게 되면서 불행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
2)경제분야
사유재산의 공개념제도적 관점으로 자본사회에서 소유욕은 식욕과 성욕처럼 노동 공유이다. 공동사회의 구현을 위해 공공이익, 수정자본 ․ 복지국가 체제를 강조했다. 소유욕은 이기심의 결과이므로 사유재산폐지를 강조하였으며, 공익을 우선으로 했다.
조나단 스위프트 작 걸리버 여행기
3)사회분야 공유(共有)개념으로 결혼제도와 가족의 혈연적 한계를 넘어서 아내와 자식을 공동소유하여 혈연적 이기주의를 극복하려했다. 아내와 자식을 공유한다는 점은 현대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윤리적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난리가 날 만한 논점이다. 이것은 마치 '걸리버여행기'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이자 정치가 조나단 스위프트(1667~1745)가 유아를 많이 낳아서 식용으로 쓰자는 얼토당토한 주장처럼 보인다. 인류학적인 견해로 보자면 문화를 윤리적 혹은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황당하고 사회 속에서 매장되거나 마녀사냥 당하기 좋은 가십꺼리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플라톤의 주장이 어떤 의미로 이런 주장을 했는지는 좀 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플라톤은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가족개념을 넘어선 공익우선주의를 이념화시켰다는 점이 특이할 점이다.
4) 교육분야
세계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인 ‘아카데메이아’를 아테네에 세웠다. 소피스트들의 논쟁술·궤변술이 아닌, 자기 성찰과 진리탐구를 위한 방법이며, 생명이 없고 또 문자에 의한 교육이 아닌 살아 있는 말을 존중하는 대화법 강조했다.
플라톤의 아케데미아
독일 시인 휄더린은 "인간은 대화를 할 때 가장 존재감을 느낀다"고 한다. 한 사람이 말을 할때 묵묵부답일 때 우리는 자신의 말이 '까임'을 당하거나 무시당한다고 여긴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소통을 의미하고, 마음이 통한다는 뜻이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생각을 공유함과 동시에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뜻이 통함) 심심상인(心心相印)은 바로 이런 뜻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얼게내지 사고 체계자체가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견해차이로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억압이거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옳다는 것은 위계질서를 통한 억지로 매도딜 수 있다.옳고 그름이 아니고 틀리고 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Ⅴ. 새로운 평가
풀라톤은 사유재산과 가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귀족주의적 이상론자이면서 학리적 급진주의자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실현가능성에서 본다면 이상국가건설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플라톤은 진솔한 이상주의자로 여겨진다. 식욕, 성욕, 수면욕구 이외에도 소유욕과 명예욕조차도 절제를 요구하는 금욕주의자이다. 개인의 슬픔은 모두의 괴로움이라는 점에서 한 개인의 불행이 국가전체의 불행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철인군주는 가족을 노예처럼 부리는 전체적인 가장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의 아픔을 떠맡아야 하는 괴로운 존재로 세상의 모든 것이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완벽하지 못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했다.
Epilogue
플라톤의 동굴비유와 이데아 사상
동굴에 사슬에 묶인채 평생을 살아가지만 한 사람이 사슬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고 온다. 한 사람이 세상을 보았고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죄수들에게 세상을 일깨운다. 동굴비유를 통해 한 사람이 자신의 틀과 한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