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둥근달을 보지 못했다.
천둥소리도 듣지 못했고 번개도 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나는 '스스로의 고독을 확인'(1)하고 있었다
외로움의 두께만큼 쌓인 눈을 바람이 날려 보내고 있었다.
오곡밥도 없었고, 고사리, 고구마순, 토란대, 다래, 취나물도 없었다.
밤, 땅콩, 잣, 호두도 없었다.
횃불을 켜지도 않았고, 불깡통도 던지지 못했다.
불장난을 하지 않아서 이웃집에 불도 나지 않았다.
불 끄느라 소방차가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고
사람들도 몰려들지 않았다.
점을 치지도 않았고, 사랑도 하지 않았다.
아득히 멀리 온 혹한의 찬바람이 세차게 불 때
고독의 두께만큼 눈이 하얗게 쌓였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도
눈은 소복이 쌓였다.
<정월대보름> /동중서
어릴 적 쥐불놀이도 하며 놀았다. 교복을 입고 늠름하게 걷는 중학생 형들은 일제강점기 순사처럼 무서웠고 절대자였다.
마을과 마을끼리 형들은 패싸움을 했고, 서열 가리기도 했다. 형들의 연애편지 신부름도 해야 했고, 마을에는 상여가 지나가는 것도 큰 행사였다.
지금 교복을 입은 형들은 흰머리가 가득하거나 머리가 벗어지거나, 이젠 주름이 가득한 아저씨가 되었고
늙음에 근심하고, 자식들을 걱정하고 부모님이 언제 떠날까 근심이다.
2022년 <정월대보름>은 누구 하나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거나하게 술 마시는 것조차
겁이 나는, 역병이 창궐로 인해 몸을 사리고 있다. 어쩌면 검은 침묵 속에서 조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다.
그 어느 때보다 흉흉하고 정신적으로 고갈 혹은 피로(exhaustion)로 지쳐있었고 특권층들을 빼고는 지쳐있었다.
희망의 불씨들을 피우는 일조차 지친 분위기였다. 아마도 언론에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열심히 살고 부지런한 사람은 얼마나 바쁘고 분주한 지.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평등하고, 주어진 삶에서 행복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함평군 월야면 - 정월대보름 맞이 세시풍속 재현 < 함평 < 전남뉴스 < 기사본문 - 남도일보 (namdonews.com)
낮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
몇 잔 마시지도 못하면서
지루할 때 술 한 잔 때리면 살 맛이 나지
꿈틀거리던 광어 한 마리
맨 살을 닿는 그 느낌은
첫 키스의 입술처럼 수줍은 맛이라 해야 할까.
어쩌면 좋아 자꾸 흥분이 되는 걸.
<낮술> / 동중서
이럴 때는 원시의 짐승이 된다고 해도 어쩌지 못할 것 같다.
'낮술을 마시니까 모르는 얼굴까지 그립다.'(2)<낮술, 권현형>라는 시어처럼
원시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몸에 대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할 수 있다면 개가 될 것이다.
맞아, 사람들이 개가 되면 안 되는데
그 개들 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몸에 대한 진실> /동중서
몸이 생명력을 지닐 때 번식을 하려는 속성을 지니는 것은 인류학이나 생태학적으로 지극히 정상이다.
건강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취향일 테지만, 그럴 일에 수군거리거나
소문이 빨리 퍼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관심이 대상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 辻井 喬(Tsuchi Dakasi), <부칠 곳 없는 편지>(1964) 중 한 구절.
朴顯瑞(1989). 日本現代詩評說, 고려원. p.524..
(2) 권현형(2013). <포옹의 방식>, 문예중앙.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