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불효교

바람이 분다고 항상 부는 것은 아니다

by 김순만

1. 바람이 항상 부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분다고 항상 부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분다고 항상 부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온다고 항상 오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있다고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 있다고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슬퍼하지 마라.

부모가 없는 사람도 있다.

자식이 힘들게 한다고 괴로워 하지 마라

자식이 없는 사람이 있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도 있고,

비가 한방울 내리지 않을 때도 있다.

바람 잘 날 없다지만 바람 잘 날은 있고,

비만 내린다지만 비가 개이는 날도 있다.


글 김순만


돌다리.png 이미지 출처:http://www.feelpoem.com/bbs/board.php?bo_table=m36&wr_id=57859

<바람이 분다고 항상 부는 것은 아니다>


Key Words: 효불효설화, 수욕정이풍부지 자용양이친부대


2. 효불효설화(孝不孝說話)


아들이 홀로 된 어머니를 위하여 다리를 놓는다는 내용의 설화.

이칭효불효교전설, 경주칠교전설, 칠성교전설분야구비문학유형

관련지역경상북도 경주시


개설

경상북도 경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교량전설(橋梁傳說)로서, 효불효교전설(孝不孝橋傳說)·경주칠교전설(慶州七橋傳說)·칠성교전설(七星橋傳說)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 교량조에 수록되어 있고, 『한국구비문학대계』 경주 월성편에 2편이 채록되었는데, 각 편의 내용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내용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효불효교는 경주부 동쪽 6리 되는 곳에 있는데, 신라 시대에 아들 일곱을 둔 홀어머니가 그 아들들이 잠든 틈에 남자를 만나러 다녔다. 그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 서로 의논하기를 “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다니시니 자식의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고 이에 돌다리를 놓았다.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기고 야행(夜行)의 나쁜 버릇을 고쳤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 다리 이름을 효불효교라고 불렀다.

구전설화에는 이 다리를 일곱 아들이 놓았다고 해서 ‘칠성교’라고 하기도 하고, 일곱 개의 돌을 놓아 만든 다리이기 때문에 ‘칠성교’ 또는 ‘칠교’라고 한다고도 전한다. 또한, 어머니에게는 효성스러운 행위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되는 일을 한 것이라 해서 ‘효불효교’라고 한다는 해석도 있다.

민간에 전하는 속신(俗信)에 자식 없는 여인이나 젖이 적은 여인이 이 다리의 교각(橋脚)에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고, 또 짝사랑으로 고민하는 여인이 이 돌에 빌면 상대방에게 그 뜻이 전달된다는 전설도 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설화는 사회의 기본 윤리 강목이었던 효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자료로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부계의 혈연이 강조되고 가문 보존이 최우선이던 조선조 사회에서 홀어머니의 밤 나들이는 인정될 수 없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여인이기에 일곱 아들이 어머니의 행위를 비난하지 않고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것은 굳어진 효의 관념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긍정하였다는 면에서 설화 향유층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본능적 욕구가 강하였던 어머니는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이 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자식 못 낳는 여인이나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기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설화는 상층 사회의 윤리 강령보다는 평민의 삶의 원리가 반영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자료출처: 민족문학대백과사전


참고문헌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0∼1988)

『한국설화문학연구』(장덕순,서울대학교출판부,1970)


3.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8)효불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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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시집 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 밭 몇마지기가 전 재산이다. 정신없이 시집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사몽 간에 일은 치른 모양이다. 아들 둘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다. 혼자서 아들 셋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셋이 쑥쑥 자랐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세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 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이다. 베개를 부둥켜 안아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농익은 30대 후반 유씨댁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삼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세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뼈를 사와 고아줬다. 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셋이 잠든 후 집을 빠져 나와 범골로 향했다. 유씨댁은 깜짝 놀랐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출처:https://www.nongmin.com/nature/NAT/ETC/172761/view (논민신문)

입력 : 2008-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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