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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Jul 20. 2022

생사의 기로에 있을때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사랑은 아름다운 장미처럼 꽃피는 것이지만 사랑은 피투성이 되는 성처를 끌어안고 가는 것이다. 가슴이 아프고 문득 어느 순간이 울컥 눈물이 나고 아슴히(아스라히) 떠오르는 기쁨도 절망이 되는 것은 이루지 못했던 사랑의 아릿다운 유희의 고통일지도 모른다.


 잘려나간 나무에서 자라나는 버섯처럼, 그게 독인지 약인지도 분별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면서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썰물처럼 빠져나간 허망과 밀물처럼 밀려오는 꿈들에 대한 마음의 길에 무엇을 의미하여 살아갈 것인가.


 고개숙여 들려다 보아야 보이는 클로바가 네잎이 아니어도 좋다.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은 그냥 거기에 피어날 뿐이고 그 자리에서 때로는 세잎으로 네잎으로 살아갈 뿐이다. 어째서 나는 네잎이 아닌가 세잎인가의 여부를 넘어서 평범이든 비범이든 간에 그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자세히 보면 개미도 풀벌레도 분주히 잘 살고 있는데, 인생이 꼬인 것 같고, 낭떨어지에 떨어질 것 같지만 떨어져도 살아 있다면 멈추어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어떤 것을 얻으려다가 어쩌다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해도 사지가 멀쩡하고, 생각이 멀쩡하면 그 사람의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하물며 손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절단되고, 암투병의 고비는 넘어서는 사람도 잘 살아간다.


  조급하고 신경질적이고 화가나는 일이 있고, 불안하고 초조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조급해야할 이유가 있고, 예민할 때가 있고 화날 때가 있고 불안하고 초조할 때는 외적 환경과 상황이 그럴만한 이유를 지니기 때문이다. 
  화낼 필요가 없는데 화를 낸 것은 자아가 외부로 상처를 반영한 것인데 그 사람의 지난 과거에 선험적으로 경험한 그 사람의 방어기제가 파괴되어 표면에 드러낼 뿐이다. 분노는 어떤 바람에 대한 무방비하게 당하게 되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고 내가 덜 불행하다는 것은 위로가 되지 않는 일이다. 지금 세상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면, 지금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실행하라.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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