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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Dec 23. 2022

눈의 우울한 샹숑

깊은 밤 눈이 내릴 때

깊은 밤 눈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
날리는 눈은
그 무엇도 하지말고
그저 휘날리는 눈송이만 바라보라 한다
설레이게 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립게 한다

눈이 묻는다
넌 뭘 하면서 살지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그저 나를 바라보는 일이야


나 처럼 하얀 자유가 되라 한다.


자유롭게 허공을 날리며
쌓이고 또 쌓이고
그 누구의 발걸음이 짓밟혀도
사각거리는
뽀드득 소리를 낸다

하얗게 쌓이고 또 쌓이고
침묵할 줄 알고
응결될 줄 알고
사랑처럼
따스한 불길에 녹아내릴 줄 안다

눈은 사랑을 안다
눈도 사랑을 아는데
나는 사랑도 모른다

침묵silence하며 쌓이는  
고요함에 쌓이고 또 쌓인다

더 매서운 추위에
더 강해지고
더 강한 찬 바람에 날릴 줄 알고
혹독한 영하에 더 견딜 줄 안다
그 어둠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어느 때는
정신과 영혼을 모두 경건할 수 있도록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다.

백지tabula rasa처럼
하얀 종이가 되라하고
새로 쓰는 인생이 되어보라 한다.

내딛는 그 순간 부터
동심(아이의 마음)이 되라하고
서두르지 말고
시나브로 쌓이는 적공지탑이라 한다.

깊은 밤일 때 눈은
더 깊은 고독을 쌓이게 하여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풍선처럼 부풀에 한다.

나를 미끄러지는 슬픔으로
밀어뜨리고
거기에 묻어
그 어떤 사랑의 마음도
눈 속에 묻어 냉동한다.



함께 할 수 있는

그 누구도 없다면

너는 분명 잘 못 산 것이다


눈은 어울릴 줄 알고 뭉칠 줄 안다


나는 어울릴 줄도 모르고 뭉칠 줄 모른다

눈이 물처럼 유기적이라면

나는 모래 속에 자갈처럼 어울릴 줄 몰랐다


혼자여도 혼자인 줄 모르면 외롭지 않으며

혼자인데 혼자임을 알면 외로움은 더 하다


고요한 밤,

눈이 쌓인 길에는

그 누구도 오지 않는다


눈길이기에.


눈이 내리면

언어를 잃어버린다

머리가 하해지는 것 같은

기쁨이어서

까닭을 알 수 없는

설레임 같아서.


더 슬픈 것은

첫사랑이 떠 올라서

다가오는 사랑이

첫사랑 보다 더 첫사랑 같기를

바라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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