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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Jan 24. 2023

점복술지도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면서 사는가

김순만의 점복술 지도(그림 저작권으로 무단도용 금지)


  여는 말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면서 사는가.  사람들에게는 종교를 묻는다면 사람들은 기독교다, 크리스천이다, 하나님 믿는데요, 불교예요. 저는 무교에요. 등등의 답을 한다. 종교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은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지극히 정신적 영역에 구획과 영역, 혹은 범주를 묻고자 함이다.

  종교를 교리가 있고, 각 종교는 그 교리를 기반으로 규칙을 만든다. 그 사람의 신년은 마치 박힌 못을 빼낼 수 없을 만큼 요지부동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신념이 '진리(truth, 眞理)' 즉 철학적 의미로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영구불변의 법칙'이면서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뜻이다.

  종교는 신념의 주체로써, 그 사람의 행동을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성경에는 십계명이 있고, 불교에는 오계(五戒, 경계학 계)가 있다. 불교의 오계는'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로 줄여 부르기도 하는 오계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겠다는 불자로서의 맹세이자, 탐욕과 악의를 버리는 방법이기도 하다(출처, 기자 오경민,2016.1.19. 불교신문 참조). 달리 해석한 부분을 살펴보면 '오계는, 불살생계(不殺生戒,자비롭게 살자)·불투도계(不偸盜戒 베풀며 살자)·불사음계(不邪淫戒 청정하게 살자)·불망어계(不妄語戒진실되게 살자)·불음주계(不飮酒戒 지혜롭게 살사)이다.'라고도 한다.  살인하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고, 음욕을 탐하지 말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계율의 밑바탕인 듯하다.

  하지만 그거야 종교 얘기지,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에 종교적인 잣대를 모두다 드리대고 측정할 수는 없다. 시대는 유튜브와 문화콘텐츠, 네플리스 등 갖가지의 미디어에서 인간의 본능적 요소를 건드리는 스릴thrill과 서스펜스, 드라마, 감동의 로맨스, 스택터클 한 액션 등에서 기분이 휘감기는 느낌을 갖고 싶어 하기 대문이다.

  

  타이틀은 '점복술 지도'라고 했지만 필자의 원래 의도는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면서 사는가'라는 질문에서 '점복술'이라는 명사에서 '뭔가 풀리지 않는 의혹과 정신적 영역에서의 틀(Schema)과 맥락'으로 사람은 어떻게 무엇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가에 대한 다소 거창하지만 가장 근원이 되는 마음이 가는 것에 대한 해석을 할 때 어찌하나 하는 질문이다.

   

출처: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4803000622

생각하는 집단

   실제적으로 한 사람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교라기보다 부모형제이고 가족의 구성원이면서, 그 사람이 사회에서 만나고 소통하고 있는 친구, 지인, 동료에 의해서 마음의 지도가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한 사람이 사회적인 판단을 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된다.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슨 공부를 하고 있고,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꺼려하고, 어떤 것에 행복 해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각자의 몫이다. 한 사람의 사고방식의 영역에서 영향력은 각 개인의 문제이지만 각 개인이 모여 사회적 모형이 되고, 집단이 된다.  엄밀히 말하면 의식의 영역에서 맺어진 집단이 종교를 이루고, 봉사활동의 단체가 되고, 누구는 운동권이, 누구는 정치적 집단이, 누구는 상류사회의 계층으로, 누구는 서민의 집단으로 진단화(grouping, 유유상종)가 되는 것이다.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

  자신이 어느 영역에 속해있지 않는 종교를 무시하고 자신의 신념만이 바르다는 신념은 무모한 것이다. 좀 가깝고 소중한 사람은 자신의 집단으로 의식의 전환을 강요하거나, 신념의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은 자신이 정한 옷만 입어라는 식(式)의 편견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의식으로 살아가든 그 의식에는 자유가 있다. 무의식이든 아니든, 신념이든 아니든. 특정 종교는 자신의 종교가 아니면 모든 종교를 악(惡)으로만 가지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만 바르고 남은 틀렸다는 점보다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보다 더 신념에 다양성을 지니는 사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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