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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Mar 29. 2023

세수하는 여인

신윤복의 단오풍정 속에 여인

단오풍정, 시냇가에서 세수하는 여인, 모작그림 김순만 작.

 머리결 가체를 그릴 때 머릿결이 살아있는 느낌을 갖으려면 명암에서 붓끝을 일차로 섬세하게 그리고, 다음에는 머릿결 다음 선을 빗으로 빗어 내린 듯 그려야 한다.

 머릿결은 자신의 머리카락과 가체의 머리카락을 가려서 그려야 한다. 즉 여인의 머리카락과 가체의 구분이 있어야 한다.

  화령점정이라 할 수 있는 눈썹은 첫 부분을 진하게 하고 눈썹의 마지막 부분은 선명하고 단정하게 끝선이 살도록 해야 하고 눈 또한 그러하다.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여인의 것인 듯 선명할 수 있도록 조심해서 여유롭고 또한 자연스럽고 단정히 붓끝을 흩트러지지 않게 끝이 서있어야 제대로 그릴 수 있다.


신윤복, 단오풍정.공유마당 CC.BY.


  [빨강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은 기녀가 사뿐히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 기녀들이 속살을 드러낸 채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과 함께 남정네들이 바위 뒤에 숨어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그림. 바로 조선 시대 3대 풍속화로 손꼽히는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이 그린 ‘단오풍정’이다.

  

  생의 풍모는 도시적인 세련미가 흐르고 그것을 표현한 선이나 채색도 아주 감각적이며 그네를 타는 여인의 치마저고리가 내뿜는 화려한 원색은 배경 색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또한 두 명의 어린 승려가 바위 틈새로 엿보는 모습은 선정적인 장면에서도 시선을 각각 다른 곳을 향하게 해 그림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로 엮어주고 있다.](출처:한국문화유산 신문)


  <단오풍정> 그림에서 구도는 봇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아낙이 1명, 바위틈에서 아낙네들을 훔쳐보는 동자승이 2명, 언덕에서 그네를 타고 가체를 따고, 머리를 빗는 여인 3명,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있는 여인 4명으로 총 10명이 등장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필자 모작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여인이 세수를 하려면 앞으로 더 몸을 숙여야 하니 각도가 시계방향으로  15도 정도는 기울여야 적당하다. 그런데 단오풍정에서 세수하는 여인이 더 눈에 가는 것은 각도상 팔을 위로하여 가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다른 기생들과 달리 가체가 너무 과하지 않는 균형감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몸을 숙으리지 않으면 옷이 다 젖을 것이다.


  서있는 여인이 과한 노출이 있는 반면 이 여인은 노출이 덜하고 시선이 누군가를 의식한다기보다 얼굴을 씻는데 몰두하고 있고 또한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이 더욱 여인을 우아하게 하는 듯 하다. 과하지 않는 덜한 노출이 아마 더 시선이 가게하고 이끌림을 주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상징적 나무인 소나무 아랫부분이 움푹 파인 점 또한 여성의 상징성이며, 동자승이 바라보고 있는 바위틈도 흡사한 느낌을 준다. 산봉우리를 남성성이라면 개울은 여성성을 전체 분위기가 휘감고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거시적 안목으로 볼때 개울을 사이로 4명씩 양분되어 8명의 여성이 등장하고 개울의 빈 틈으로 동자승이 훔쳐보는 것으로 구도를 잡은 것이로 생각할 수 있다.

  

  신윤복은  당시 과감한 몸의 예술성을 드러냄으로 하여 인물이 살아있는 느낌을 파격적으로 제시하였다.

  세수하는 여인은 이런 면에서 그의 작품에서 섬세하게 바라볼만한 매력을 충분히 지닌다.



  우리 역사넷 한국문화사에서 기생의 옷차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생의 옷차림은 천민으로서는 누릴 수 없는 사치스런

움이 어느 정도 허용된 특수한 경우였다. 세종대에 기생의 머리 장신구에 금은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기생의 옷감으로 사라 능단(紗羅綾緞)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주장도 역시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복식 금제(禁制)에서 기생들은 예외적인 존재에 속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놓은 비단옷에 가죽신, 금은으로 만든 장신 구와 노리개의 착용까지 가능하게 됨으로써 전체적으 로 볼 때 양반 부녀와 같은 옷차림이 허용되었다. 기생의 호사스러운 옷차림에 대해서 조선 사회는 매우 관대하였던 셈이다. 다만, 양반 부녀와의 구별을 위해 겹치마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었고, 입는 방법도 양반 부녀가 치마를 왼쪽으로 여미었던 데 비해 기생은 오른쪽으로 여미었으며, 말을 탈 때에 말군(襪裙)을 입지 않는 것이 달랐을 뿐이었다."


  옷 입는 것이 이러했지만 관기는 천민에 가까웠으므로 옷을 입는 것을 제외하고 국가적인 관리로 기생이 관리되었다고 한다. 기생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이름이 있었다.


  "어린 기생은 동기(童妓) 또는 소기(少妓), 늙은 기생은 노기(老妓), 퇴역한 기생은 퇴기(退妓)라 하였고, 우두머리 기생은 행수기(行首妓), 서울 기생 은 경기(京妓), 지방 기생은 향기(鄕妓)로 구분하였으며, 향기로서 서울로 뽑혀온 기생은 선상기(選上妓), 사랑하는 기생은 애기(愛妓), 아름다운 기생은 미기(美妓), 이름이 난 뛰어난 기생은 명기(名妓)라 하였다. 그 밖에 여악(女樂)은 음악을 하는 기생을 가리켰 고, 주탕(酒湯)은 용모가 뛰어난 관비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기생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혼용하였 다. 해어화(解語花)는 말을 아는 꽃이라는 의미로 역시 기생을 지칭하는 용어로 많이 쓰였으며, 노류 장화(路柳墻花)도 누구나 취할 수 있는 처지를 빗 대어 기생을 지칭하였다.

  약방 기생(藥房妓生)은 내의원이나 혜민서 소속 의 의녀를 가리키는 말로, 그들 역시 기생의 업무를 겸한 경우가 많아 붙인 표현이다. 상방기생(尙 房妓生)은 상의원(尙衣院)의 침선비(針線婢)를 가리키는 말로, 역시 기생 업무를 겸한 경우가 많아 일컬은 말이다."(출처:한국문화사, 우리 역사넷)


  사실상 기생들은 천민이다. 천민들의 부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천민의 범주는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형(定形)

을 말하기 어렵다. 다만, 고려와 조선시대에 국한하자 면 대체로 노비(奴婢) 외에 화척(禾尺)·백정(白丁)·무 당(巫堂)·기생(妓生)·광대(廣大)·재인(才人)·악공 (樂工)·사당(社堂)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들

천민 유형은 현재 대부분 자취가 사라졌지만, 일부가 지금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보통 명리학에서 사주를 볼 때 '기생과 무속인'은 보통 토 즉 흙이 팔자의 구성에서  많으며, 이들은 생각보다 힘든 인생의 역경을 살게 된다.


  웃음을 팔고 몸을 팔아야 하는데 현대인들의 중에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단지 얼굴만 보이지 않는 뿐 엄청난 감정노동에 시달린다고 봐야 한다.

  

  단오풍정은 사실상 이들의 그나마 즐길 수 있는 날이고 저희들끼리 술을 마시고 한풀이도 하는 풍정이라는 점에서 그림처럼 화려하기보다 슬픔과 애환이 여백 속에서 공존한다고 봐야 한다.




Reference

우리역사넷 기생에 관한 내용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17_0030_0020_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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