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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Apr 01. 2023

비록 초라할지라도

비움의 색상도 곱디곱도록

화가 최원민 작

지붕에서 물이 새면

세숫대야, 양은냄비, 대접, 종지기까지

띵띵 띵 소리를 낸다.


바람에 날려가거나

어느새 허물어질 것 같은 집이

나는 좋다.


나 같아서.


몇십 년 후면

나도 얼굴에 잔뜩

주름이 끼고

이빨이 빠지고

머리도 빠지고

손도 늙어가겠지.


차도은 작

나의 뼈에 구멍이 뚫리고

바람이 갈대의 몸을 흔들어대듯,

나도 흔들릴 거야

수분을 세월에 날려 보내며.


화가 차도은 작

내가 지닌 것은 갈수록

낡아가고

내다 버려야 할 기억과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기억들 사이로

시간의 추억들이

눈처럼 녹고

어디론가 흘러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다.

봉곡사, 김순만 포토

나를 위태롭게 쌓고 있는

꿈들,

위태로운 시간 속에서

봉곡사 사탑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 수 있을까.


늙는다는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

그 끝이 또 다른 생을 열지 말지는

죽어봐야 안다.

공주 성낭당

어느 날

기억이 흐릿해지고

내가 나를 기억할 수 없는

그날

풍경소리에

날려가겠지.


지붕에 물이 새듯이

몸은 가눌 수 없는 채로

그 무엇도 모두

놓고 가야 하기에

그 무엇도 연하지 않는

겸손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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