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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May 23. 2023

가묘

이름 없는 묘지

나는 둔탁하고 연약하다.

매사 자신감도 없는 데다가

사람들의 시선도 피한다.

눈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다가오면

나를 보여주기가 민망스럽다.

그래서일까

청소하는 시간도 좋고

옷들이 샤워를 마치고

빨랫줄에서 바람에 날릴 때

내 영혼도 깔끔해지는 것 같아 좋다.


어떤 낯선 함정에 빠져서

벗어날 수 없는 시치프스다.


새들은

수줍은 나를 보고 야단이다.

고개를 들고 다니라고.


몇 년 만에 산을 걸었다.

기억의 숲 속에 서성거리며

산기슭에

풀들이 무성히 자라난 묘지를 보고,

어느 날 이런 곳에 눕게 될지 모르는

나를 상상했다.


새들은 지저귄다.

종달새도 참새도.

저희들끼리 야단이다.


무지 외로울 때

LA 도시 숲 어딘가 묘지를 산책하곤 했다.

돌비석에

탄생과 죽음이 기록된 이름을 보았다.


아름다운 사람도 죽고

외로운 사람도 죽고

사랑하는 사람도 죽고

나도 죽는다.


죽음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가난하다고,

아니 부유하다고 봐주질 않는다.


삶이 불공평하듯이 죽음도 불공평하다.


죽음은 단정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은 번거롭다.

그러지 않으려고 죽도록 사랑하지만

사랑도 죽음으로 가는 길은 동행하지 않는다.


산은 얼마다 많은

생명을 품고

또 죽음도 품었을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려 해도

누군가의 시선에 내가 보인다.


가슴 아픈 이별이

무서운 사람은

그 어떤 사랑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일수록

가슴이 아프다.


죽도록 가슴 아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물만 나는

그런 절절한 사랑이 그립다.


산은

가슴 아픈 사랑을

천만년 하였기에

산을 찾는 이에게

흐뭇한 생명을 준다.


죽음을 품에 안아서

꺼져가는 삶에

소박한 애착을 주는 것일까.


무덤가에

피어나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들풀처럼

내 영혼도 꽃이 필 수 있을까.


가묘 옆 12지신
봉서산,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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