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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Jul 04. 2023

아버지

공자의 정명론을 참조하여

  산수(傘壽)라는 말은 팔순을 이르는 말이다.  산((傘)은 '우산 산'을 뜻하며 우산 산의 파자(破字)는 팔(八)과  십(十)을 합하고 그 안에 네 명의 사람인(人)은 자식들 뜻하는 듯하다.

  아버지는 작고 사소한 일을 따지기 보다 보다 큰 그림을 그리며 지켜보는 면이 있다.

 '농사를 지을 때 아무리 물을 뿌린다 해도 비 오는 것과 비교될 수 없으니 농사는 곧 하늘이 짓는 것이오.'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은 하늘이 기운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상응한다는 뜻이다. '아비'라는 말은 '압이'라는 말인데 전설모음화되어 '애비'(아비)가 되고, '애비'(아비)나 '애미'(어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는 말을 고상하게 말하면 '정명(正名)'이 되고, 이것을 이론화시킨 것이 정명론이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를 하려면 무엇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냐고 물었다. 공자는 반드시 정명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1). 이름값의 함의(涵義)를 일컫는 말이다. 좀 더 풀어 말하면 부엌칼은 잘 들어야 음식을 요리할 때 손을 오히려 베이지 않고 그릇은 새지 말아야 한다. 
  (1) 君君, 臣臣, 父父, 子子. 논어; 안연(顔淵)
  사람도 도구도 물건도 모두 제각기 그 몫에 해당하는 이름값을 해야 한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G. Flaubert)는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언어의 정확성(的確性)을 강조하는 말인데, 상황과 문맥에 따라 적절한 어휘(appropriate lexicon)를 표현하는 것은 비단 문맥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만의 특유의 색상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자의 '정명론(正名論)'도, 자크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도 모두 언어에 따른 적절한, 그 언어 자체의 역할을 발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맥 한다. 
   충서(忠恕)는 충성(忠)을 하면서 또한 용서(恕forgiveness)를 하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에게 충성을 한다는 것도 힘겹고, 용서는 더 힘겹다. 
  정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신의 역할에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충서는 충성하면서 용서도 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잘못을 봐준다는 것인데, 주로 '내면의 감정에서 의도적으로 복수를 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복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대다수는 그 사람과 무척이나 가까웠던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가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객기를 부리며 해악을 끼치는 사람도 있다. 
  '묻지 마 살인'이나 '묻지 마 폭행', '묻지 마 고소'는 어느 범위에서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공포스럽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정신적 문제성을 지닌 사람들은 그 어떤 공식으로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몇 병의 소주를 마셨다. 원인은 헤어진 아픔이고 결과는 술을 마셨다이다. 그런데 술을 잔뜩 마신 이 사람이 헤어진 여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과속으로 운전을 했다. 원인은 보고 싶은 마음이고 결과는 과속운전이다. 그런데 과속운전이 술 마신 이후라면 음주과속운전이고, 이로 인하여 사고가 났다. 사고의 결과 몇 명이 사망이 되었다면 이경우 원인은 헤어진 아픔이며, 결과는 음주운전 가해자로 뜻하지 않는 사고로 사망에 도달한 것이다.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은 하늘이 기운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상응한다는 뜻이다. '아비'라는 말은 '압이'라는 말인데 전설모음화되어 '애비'(아비)가 되고, '애비'(아비)나 '애미'(어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는 말을 고상하게 말하면 '정명(正名)'이 되고, 이것을 이론화시킨 것이 정명론이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를 하려면 무엇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냐고 물었다. 공자는 반드시 정명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1). 이름값의 함의(涵義)를 일컫는 말이다. 좀 더 풀어 말하면 부엌칼은 잘 들어야 음식을 요리할 때 손을 오히려 베이지 않고 그릇은 새지 말아야 한다. 


  (1) 君君, 臣臣, 父父, 子子. 논어; 안연(顔淵)


  사람도 도구도 물건도 모두 제각기 그 몫에 해당하는 이름값을 해야 한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G. Flaubert)는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언어의 정확성(的確性)을 강조하는 말인데, 상황과 문맥에 따라 적절한 어휘(appropriate lexicon)를 표현하는 것은 비단 문맥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만의 특유의 색상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자의 '정명론(正名論)'도, 자크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도 모두 언어에 따른 적절한, 그 언어 자체의 역할을 발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맥 한다. 


   충서(忠恕)는 충성(忠)을 하면서 또한 용서(恕forgiveness)를 하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에게 충성을 한다는 것도 힘겹고, 용서는 더 힘겹다. 


  정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신의 역할에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충서는 충성하면서 용서도 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잘못을 봐준다는 것인데, 주로 '내면의 감정에서 의도적으로 복수를 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복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대다수는 그 사람과 무척이나 가까웠던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가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객기를 부리며 해악을 끼치는 사람도 있다. 


  '묻지 마 살인'이나 '묻지 마 폭행', '묻지 마 고소'는 어느 범위에서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공포스럽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정신적 문제성을 지닌 사람들은 그 어떤 공식으로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몇 병의 소주를 마셨다. 원인은 헤어진 아픔이고 결과는 술을 마셨다이다. 그런데 술을 잔뜩 마신 이 사람이 헤어진 여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과속으로 운전을 했다. 원인은 보고 싶은 마음이고 결과는 과속운전이다. 그런데 과속운전이 술 마신 이후라면 음주과속운전이고, 이로 인하여 사고가 났다. 사고의 결과 몇 명이 사망이 되었다면 이경우 원인은 헤어진 아픔이며, 결과는 음주운전 가해자로 뜻하지 않는 사고로 사망에 도달한 것이다. 



 임금에게 신하가 충성을 하는 것도 임금 됨을 보고 충성을 하는 것이고, 사람을 용서하는데도 용서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    忠恕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충서위도불원, 시제기이불원, 역물시어인(중용 제13장 13-3.) 13-3. 충서는 도로부터 멀리 있지 아니 하다. 자기에게 베풀어보아 원하지 아니 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지어다.(출처:중용 제13장 13-3. 충서위도불원, 시제기이불원, 역물시어인. (tistory.com))



 임금에게 신하가 충성을 하는 것도 임금 됨을 보고 충성을 하는 것이고, 사람을 용서하는데도 용서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 


   忠恕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충서위도불원, 시제기이불원, 역물시어인(중용 제13장 13-3.) 

13-3. 충서는 도로부터 멀리 있지 아니 하다. 자기에게 베풀어보아 원하지 아니 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지어다.(출처:중용 제13장 13-3. 충서위도불원, 시제기이불원, 역물시어인. (tistory.com))

  글내용을 잘 살펴보면 ['주희가 이곳의 주석에도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자기를 미루어 타인에게 미치는 것을 서라고 한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미 황간이 『논어』 소에서 "충이란 자기 내면 한가운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요, 서란 자기를 헤아려 사물을 형량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한 것을 계승한 것이다.]



  아버지라는 말에서 정명론과 충서를 논한 것은 아버지 다움과 동시에 자식다움, 그리고 그 자식은 금새 또한 아버지가 된다는 점에서 부모에서 효하지 않는 자는 자식에게 불효를 당한다는 개념이다. 설령 자식들에게 불효를 당할 수 있는 전재가 따른다 해도 효를 하는 것은 행함의 근본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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