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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Aug 18. 2023

눈이 그립다

무더위에 그리운 겨울




깊은 밤 내리는 눈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

날리는 눈은 소리 없이 내린다.

비처럼 요란함이 없다.


날리는 눈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넋을 잊고 그 무슨 근심도 잊고 그저 휘날리는 눈송이만 바라보게 한다.


허공을 마음대로 휘저으며 사람의 마음도 휘젓는다.

까닭 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립게 한다


눈이 묻는다. 넌 뭘 하면서 살지.


눈이 말한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자유롭게 허공을 날리며 쌓이고 또 쌓이고

그 누구의 발걸음이 짓밟혀도 밟히는 만큼 소리를 낸다


하얗게 쌓이고 또 쌓이고

자유로우면서도  응결할 줄 알고

따스한 사랑에 녹아내릴 줄 안다



눈은 사랑을 안다

눈도 사랑을 아는데 나는 사랑도 모른다


사랑은 침묵하는 고요 속에 쌓인다.  

언어가 없어도 허공의 하늘에서 수천 가지 속삭인다.


더 매서운 추위에 더 강해지고 더 강한 찬 바람에 날릴 줄 알고

혹독한 영하에 더 견딜 줄 안다.


그 어둠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어느 때는 정신과 영혼을 모두 경건할 수 있도록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다.


백지처럼 하얀 종이가 돼라 하고

새로 쓰는 인생이 되어보라 한다.


대지를 내딛는 그 순간부터 세상을 처음 걷는 아이의 마음이 돼라 하고

그 무엇에도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깊은 밤일 때 눈은 더 깊은 고독을 쌓이게 하여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풍선처럼 부풀에 한다.


나를 미끄러지는 슬픔으로 밀어뜨리고 

거기에 아름다운 영혼도 묻어 그 어떤 사랑의 마음도 눈 속에 묻어 냉동시킨다.




창작메모.


  인간은 시공을 산다. 시간은 춘하추동이고 공간은 동서남북이다. 시간은 하늘의 영역이고 땅은 땅의 영역이다.  시간은 둥글며 공간은 네모이다. 이것이 나의 시공에 대한 정의이다. 

   무더위로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한 번 잠에 빠지면 며칠이라도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 무더울 때의 잠은 설치거나 잠을 자도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펑유란 '중국철학사(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중에서 양명학과 육구연(1139-1193)의 유가철학의 양명학과 심학의 책이 흥미로웠다.

  육구연과 왕수인은 돈오의 결과에 따르는 깊은 이해가 있는 것 같다. '우주는 곧 는 곧 나의 마음이요, 내 마음은 곧 宇宙이다." ( 宇宙便是吾心;吾心便是宇宙,〔象山全集. 卷33〕


   여름에 겨울을 불러오든 죽음을 삶에 불러오는 모든 것은 그 사람의 그때그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은 잘 살려면 생각이 맑아야 하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것을 맑고 단정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무지 서투르다. 그러나 나무가 벌레가 먹히고 어딘가 파여있다고 해서 나무가 아닌 것은 아니듯이. 무표정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기쁨도 슬픔도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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