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립일기

06. 콩나물도 손질이 필요하다

세상에 그냥 거져 되는 일은 없다. 콩나물 한봉지도.

by 부엉부엉

콩나물도 손질해야해?

혼자 살게되면 할 일이 많아진 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손이 가는 일이 많은 줄은 몰랐다.

부끄럽지만 콩나물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오늘에서야 안 사람이다. 주기적인 이불 빨래는 물론, 식재료가 썩기전 헤치우기 위해 요리도 부지런히 해야한다.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책장의 먼지도 자주 털어줘야 하고, 그놈의 머리카락이 하수구를 막지 않도록 화장실 청소도 까먹지 말아야 한다. 세면대나 변기에 붉은 색 물때가 조금 보일때 쯤이면 닦아주는 일도 잊지 말아야한다. 고작 한 명의 인간이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이렇게나 많은 일이 수반된다.


오늘 저녁에 콩나물을 다듬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콩나물도 다듬어야 한다니? 그냥 봉지채 씻어서 먹는거 아니였어?

이 많은 걸 하나하나 다 다듬어야 한다고?

언제 다한담. 배고프니까 그냥 이것만 해서 먹을래.

봉지의 1/3을 다듬다가 포기한 나는 결론적으로 맛있는 콩불 한상을 차리긴 했지만, 고기에 비해 콩나물이 현저히 부족한건 어찌할 수 없었다. 990원짜리 콩나물 한 봉지를 다듬는 것도 손을 거쳐야 한다니. 세상에 거져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또 알게된다.


콩나물, 우리집 식탁에는 콩나물이 자주 등장했다.

콩나물 무침, 콩나물 불고기, 콩나물 국. 그 외에도 다른 요리의 속재료로 콩나물이 많이 사용되었다. 나는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을 매우 좋아해서, 엄마가 반찬 뭐해줄까라고 물어보면 언제나 “그냥 콩나물 넣고 김치찌개나 끓여먹자.” 혹은 “그냥 콩나물이나 무쳐먹쟈.” 혹은 “그냥 콩나물 좀 넣고 후라이랑 비벼먹자.” 라고 답하곤 하였다. 콩나물은 맛있지만 요리 레벨의 최하위 재료로 느껴졌기에, 언제나 콩나물 앞에는 “그냥”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요리 치트키인줄 알고 사왔던 990원짜리 콩나물이 내게 노동력을 요구하다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콩나물 다듬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기도하다. 밥상위에 올라온 콩나물만 기억했지, 바가지에 쌓인채 싱크대에 버려진 일부 콩나물 대가리는 기억 속 저편에 뭍어두었나보다. 27년만에 알게된 콩나물의 진실, 나는 너무도 부끄럽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먹었던 콩나물의 여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족히 몇 키로는 먹었을 콩나물이 모두 엄마의 손을 거쳐 한땀한땀 걸러진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니 벌써 배가 차는 듯하다. 썩은 콩대가리를 날리고 비실대는 뿌리를 잘라, 싱싱한 줄기만 살아남았기에 아삭할 수 있었겠지.

엄마의 손가락 지휘하에 나름 엄격한 서바이벌을 거치고 있었는데, 나는 “그냥” 이라는 말로 비하아닌 비하를 하고 있었다. 최하위 레벨로 보이는 콩나물은 절대 “그냥” 콩나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는 알겠다. 그동안 내가 “그냥” 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세상에 그냥 거져 되는 일은 없다. 콩나물 한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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