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립일기

05. 나의 모닝루틴, 엄마의 모닝루틴

by 부엉부엉

새로 생긴 습관들

독립한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완벽한 빌트인 시스템 덕에 공장형 하우스 같기만 하던 공간이 이제 조금씩 집의 온기를 머금어 가고 있다. 내 취향과 습관으로 채워지고 손길이 묻어나는 것을 보니 이제 집이랑 조금 친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루틴을 만든다. 나라는 사람도 그대로고, 옷도 책도 식기도 본가에서 넘어온 것이 대부분인데, 놓여진 위치가 달라서일까. 똑같은 물건을 쥔채로 전에 없던 새로운 습관이 생겨나고 있다.


나의 모닝 루틴, 엄마의 모닝 루틴

본가에서 살 때 내 모닝루틴은 이러했다.

침대에서 기어나옴 →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음 →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여민채 방에 돌아옴 → 방에서 간단히 기초화장을 함 → 방에 있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우다다 대충 말림

새 집에서 보내는 첫 일주일, 이 동선을 그대로 따라보았다. 일단 출근할 때는 몰랐는데 퇴근하고 나니 참혹한 풍경이었다. 잠옷과 이불이 뒤엉켜 널부러져 있는 것은 당연지사, 머리를 여몄던 젖은 수건은 처음 버려진 그곳에서 여전히 젖은채로 나를 반기고 있었고 (냄새남), 무엇보다도 머리카락은 언제 이리 많이 빠졌는지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점령중이었다.

정리를 하고 가면 좋으련만 바쁜 출근시간대에 그럴 여유는 추호도 없으니, 나는 한놈만 패자는 전략으로 물건들의 위치선정을 다시 했다. 드라이기와 스킨로션, 화장품, 빗, 렌즈통 등 출근준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화장실에 몰아 넣었다. 화장실에서 다 해결한 뒤 옷만입고 그대로 나갈 수 있도록. 물론 화장실은 여전히 더러워지지, 적어도 머리카락의 점령지가 침실까지 침범하지는 않으므로 아주 만족스럽다.

지금의 내 모닝루틴은 이러하다.

침대에서 기어나옴 → "화장실에서" 머리감고 말리고 스킨케어 후 기초화장 그리고 렌즈착용 → 옷입고 나감!

어쩌면 아파트에서 살다가 좁은 원룸으로 옮겨왔으니 너무도 당연한 동선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수백개의 죽은 머리카락을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엄마의 모닝루틴은 어땠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네 식구의 몸에서 떨어진 수백개의 체모들을, 엄마는 매일 아침 청소기로 쓸어 담았겠지. 왜 한번도 머리 좀 화장실에서 말리라고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간의 편안함과 엄마의 모닝루틴을 맞바꾼 기분이 들어 조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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