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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본 거

소년은 화마를 헤쳐나가는 꿈을 꾸곤 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2/2)

by 온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1/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모두가 친구가 되는 이상적인 세계


히미 덕분에 마히토는 나츠코가 있는 산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산실은 출입이 금기시된 곳으로, 탑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히토는 나츠코에게 다가가 나츠코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탑 바깥에서 마히토에게 보여준 친절과 배려와는 다르게, 산실에서 눈을 뜬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화를 냈다. 따뜻하게 웃고 마히토를 안아주던 나츠코 역시 자신을 경계하고 미워하는 마히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나츠코는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내보인다. 마히토에게 싫다고 말하며 화를 내고 어서 돌아가라 소리쳤다. 마히토는 그런 나츠코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진심을 보여줄 용기를 얻었다. 마히토는 탑에 들어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키리코와 함께하며 죽음과 삶이라는 거대한 생명의 순환을 배웠고, 적대하던 왜가리와 함께하며 대립하는 대상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고, 히미와 함께 나츠코가 있는 산실에 도착하며 마침내 나츠코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한 층 성숙해진 소년에게 나츠코는 더 이상 밀어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화를 내며 소리치는 나츠코에게 손을 뻗고 다가가며 마침내 '엄마'라고 외친다. 나츠코와 어머니가 자매라는 사실은 이제 거부감이 들기보다, 이미 한가족이었던 나츠코와 더 깊고 편안한 관계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어머니와 닮은 외모는 더 이상 마히토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기보다, 더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게 도왔다. 나츠코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친절과 배려는 더 이상 위선처럼 느껴지기보다, 상실의 고통 속에 홀로 내버려져 외로웠던 소년이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둘은 탑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진솔한 고백을 하며 진정으로 화해하고 가족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금기를 어긴 마히토는 탑을 지배하는 운석의 힘에 의해 산실에서 쫓겨나게 되고, 미히토를 산실까지 안내한 죄로 히미는 의식을 잃고 앵무새들에게 잡히고 만다. 함께 의식을 잃은 마히토는 탑의 주인을 만난다. 탑의 주인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이세계의 균형을 조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간신히 탑을 톡 건드는 것으로 조율을 마무리했지만 탑의 수명을 하루 연장하는 게 고작이었다. 탑 주인의 정체는 아주 옛날 사라진 마히토의 고조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마히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혈육에게만 계승 가능한 자신의 자리를 마히토에게 물려주려 한다. 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악의로 가득한 세계가 아닌, 악의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악의에 물들지 않은 돌을 보여주며, 13개의 조각을 3일에 하나씩 쌓아 총 39일에 걸쳐 탑을 쌓아야만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음을 알려줬다.



앵무새에게 잡혀온 히미와 할아버지의 앞에서 마히토는 자신의 악의를 고백했다. 마히토는 자신에게 깃든 악의의 증거로 머리에 난 상처를 보여준다. 이 상처는 친구, 아버지, 나츠코 그 누구를 향했든 스스로 자해해서 누군가를 속이고 자신의 악의를 표출했던 흔적으로 남아 마히토에게 깃든 악의를 증명하고 있었다. 마히토는 악의에 물들지 않은 조각들과는 무관하게 자신은 이상적인 세계를 구축할 자격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마히토에게 탑의 주인자리를 물려주려 하는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낀 앵무대왕은 마히토를 미행해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앵무대왕은 탐욕과 악의로 물든 손으로 13개의 돌조각을 순식간에 쌓아 올린다. 사흘에 거쳐 쌓아도 모자를, 주인의 피를 이은자가 쌓아도 모자를, 악의가 깃들지 않은 자가 쌓아도 모자를 탑을 앵무대왕이 모든 걸 무시하고 쌓아버렸다. 당연한 결과라는 듯 탑은 붕괴하기 시작한다.



마히토는 자신의 악의를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기 위해 원래 세계로 돌아가 친구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친구란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의미했다. 세계를 더 나아지게 만드는 건, 과거와 편견에 연연하지 않고 다가가 '친구'라는 화합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마히토는 생각했다. 결국 마히토의 이런 결정은 다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원작의 소설이자 어머니가 남긴 유산의 교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정, 사랑, 존중 그리고 올바름을 선택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마히토는 탑의 새로운 창조주가 되기보다 가족과 함께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세계를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마히토의 올곧은 마음에 감명받고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간 히미는 자신의 정해진 죽음을 알면서도 마히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이 있는 책을 남길 수 있게 되며 마히토의 선택은 필연이 되었다. 무너져가는 탑에서 마히토와 나츠코, 왜가리는 무사히 빠져나온다. 탑의 주민이었던 앵무새와 펠리컨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듯 자유롭게 날아오르며 하늘을 가득 수놓았다. 분명 마히토의 심장을 노리며 적대했던 왜가리였지만 여정을 함께하며 둘의 관계는 달라져있었다. 왜가리는 탑의 기억을 잊으라는 말과 함께 마히토에게 '잘 있어, 친구'라고 말하며 날아간다. 마히토가 할아버지 앞에서 말했던 '친구'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가장 먼저 대립했던 적(敵)마저도 친구로 만들며 벌써 실현되고 있었다. 왜가리 친구부터 시작해 하나가 된 가족, 끝나버린 전쟁에 이르기까지 마히토의 세계는 더 나아지고 있었다.








콤플렉스로 이해하는 성장과 회복의 이야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야기는 소년의 콤플렉스에서 시작하고 있다. 콤플렉스는 정신적 상처-감정적 충격으로 말미암아 의식으로부터 일부가 떨어져 나가 생겨난다. 불타는 병원의 화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기력한 자신, 떠나버린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 결핍은 소년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시작, 불과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소년은 잠시 머뭇거렸다. 당장 뛰쳐나가도 모자랄 시간에 옷을 갈아입는답시고 방 안으로 돌아가 옷을 챙겨 입고 나왔었다. 그때 느낀 공포와 자기혐오는 소년의 콤플렉스를 강화시켰다. 게다가 혼란과 비극, 고통이 난무하는 시대는 소년을 어린아이로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소년에게 응석과 어리광부리기는 사치였고 아물지 못한 상실이라는 상처는 미처 치유되지 못한 채 소년을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게 만들었다. 씩씩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중무장된 가면을 쓴 소년을 칭찬하는 주변 사람과 가족들, 마히토의 가면을 더욱 견고하고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마히토는 그렇게 내면은 상처 입고 유약하지만 겉으로는 과묵하고 단단한 소년이 되었다.



어머니를 함께 추억해야 할 아버지는 마히토와 함께 충분히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고, 새엄마랍시고 등장한 사람은 어머니의 동생이라는 사실, 그런 새엄마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 가면을 쓴 소년은 고독과 고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스스로 삭이고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죽음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새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을 향하던 분노와 증오의 화살을 나츠코를 향해 돌리기에 충분했다. 나츠코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무뚝뚝하고 깍듯하게 인사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서로의 거리감과 과묵한 모습은 예의 바르고 조숙한 소년이 아니라 나츠코를 향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마히토는 이사 온 첫날, 화마가 온 거리를 물들인 거리를 끝없이 달리는 꿈을 꾼다. 꿈을 통해서야 간신히 꾹꾹 눌러 놓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소년이 느끼는 고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마히토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불안하고 예민한 소년이었기에 현실과 환상 사이 틈을 감지하고 이세계로 여정을 떠날 수 있는 역할을 맡기에 적합했다. 탑은 이세계이면서 동시에 마히토의 무의식 세계로 해석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마히토가 탑의 내부에서 마주한 첫 번째 인물인 젊은 모습의 키리코는 마히토와 같은 위치에 비슷한 상처를 가졌다. 키리코의 모습을 한 마히토의 무의식의 상(像)인 셈이다. 그런 키리코가 마히토에게 던지는 질문이 인상적이다. 마히토에게 탑에 들어온 목적과 나츠코의 관계에 대한 감정상태에 대해서 묻는다. 이는 키리코뿐만 아니다. 탑 안에서 만난 또 다른 등장인물인 히미 역시 마히토에게 나츠코와의 관계와 감정상태에 대해 묻는다. 수시로 마히토에게 탑에 들어온 목적과 나츠코를 향한 감정상태를 확인하는 덕분에 마히토의 의식이 성숙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고, 극 중 인물인 마히토는 질문을 통해 성찰하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의식한다. 콤플렉스를 의식한다는 것은 인격 성숙에 중요한 과제가 된다. 콤플렉스는 방치되면 무의식에 그림자로 강하게 자리 잡고 의식을 자극하고 질서를 교란한다. 심해지면 의식은 콤플렉스에 사로잡힌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소년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로 형성된 콤플렉스를 어떻게 의식화하고 성숙한 인격을 형성하는가'를 담은 성장드라마라는 가장 큰 줄기의 테마를 갖게 된다.

소년의 성장은 마히토가 나츠코를 지칭하는 표현의 변화를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탑을 들어오기 직전, 키리코가 마히토를 막아설 때는 '이모'라는 호칭을 썼다. 이모는 어머니와 나츠코의 관계가 부각되는 호칭이다. 나츠코는 어머니의 혈육일 뿐 결코 어머니라는 자리로 들어올 수 없는 머나먼 심리적 거리감을 드러낸다. 왜가리에 의해 어머니의 죽음을 의식하고 난 후, 이세계에서 만난 젊은 키리코가 물었을 때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족인 아버지를 언급하며 자신은 아직 인정하긴 어렵지만 아버지가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의 공백을 인정하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 자리에 한층 가까워졌다. 그 존중의 의미로 마히토는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을 찾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가족으로서 나츠코 찾고 데려오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탑의 여정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마히토는 히미와 대화 속에서 나츠코를 찾기 위해 탑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이전보다 강하게 자신의 의지를 밝힌다. 마침내 마히토는 탑의 가장 아래,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산실에서 나츠코를 마주한다. 잠든 나츠코를 처음 부를 때는 '나츠코 씨'라고 말하지만 자신에게 화를 내며 당장 돌아가라고 외치는 나츠코를 향해 마침내 '엄마'라고 말한다. '엄마'라고 부름으로써 자신을 불안하고 유약하게 만들던 상처를 극복하고 나츠코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은 의지를 밝힌다. 마히토와 나츠코의 관계를 통해 소년이 콤플렉스를 의식화하고 성숙한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진정한 의미의 회복은 무의식의 그림자를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신의 일부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콤플렉스는 제거해야 하는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다. 그림자는 악하고 부정적이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늘에 가려지고 억압되고 버려져 있었을 뿐, 의식이라는 햇빛을 보는 순간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밝든, 어둡든, 좋든, 싫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균형 있고 조화로운 자아상을 형성하게 되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건강한 정신세계의 근간을 갖출 수 있다. 여리고 불안하고 고독했던 마히토는 탑에서의 여정을 통해 건강한 정신세계의 근간을 갖출 수 있었다. 나츠코를 탑에서 데려 나오고 전쟁이 끝나고 저택에서 떠나는 소년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아래층에서 소년을 기다리는 정말 하나 된 가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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