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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이 자본이 될 때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을 읽고 (1/2)

by 온명



이 책을 처음 보게 된 건, 5년 전 쯤 인 듯 합니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라는 책을 지인에게 추천 받아서 읽게 된 후, 저자와 츠타야에 관심이 생겨 다른 책도 찾아보게 된 게 시작이었습니다. 18년 겨울 쯤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제게 이 책은 꽤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스다 무네아키가 '츠타야'라는 공간을 기획하고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헛된 망상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거든요. 그저 시키는 것 열심히 할 뿐인 제게 진정한 의미의 자유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 저는 제게 주어진 선택지와 제가 가진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답답함에 무력감에 젖어가던 차였어요. 어릴 때부터 늘 들어오던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전도유망한 기업이나 직업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비슷한 메시지, 비슷한 성공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유독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 제게 깊이 자리 잡은 까닭은 독서가 습관으로 잡아가던 때 읽은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메시지를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던 차에 제가 받아들이기 좋은 언어로, 제게 필요했던 이야기를, 필요할 때 때마침 이야기 해준 책이었습니다. 책과 책이 주는 교훈에 한창 관심이 많던 시기였기에 '꿈을 찾고 실현 시키는 법'이라는 메시지가 와닿았고, 그토록 갈망하면서도 늘 도망쳐왔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며 본격적으로 스스로 돌아보는 시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대답을 찾으며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힘을 얻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질문의 답에 한걸음 다가갈때마다 문득 이 책이 떠올라 펼쳐보곤 합니다. 이제 「지적자본론」에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삶과 생각만이 담겨 있는 게 아니라, 5년간 변화해온 제 삶과 생각도 함께 담겨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종류의 책이 아무리 많아도 자꾸만 이 책을 꺼내보게 됩니다. 여러 차례 읽으며 남긴 지난 삶의 흔적과 변화한 제 사고 방식을 다시 쭉 늘어놓고 '내 삶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점검해 봅니다.





좋아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게


세상엔 수많은 사람의 수 만큼이나 수많은 가치관과 기준에 의해 형성되는 수많은 가치가 있습니다. 가치라는 것이 일단 형성되면 비슷한 가치를 지닌 무언가와 교환할 수 있게 되는데요, 우리가 흔히 '쓸모 있다'라고 평가하는 모든 것에는 제각기 가치가 담겨있는 셈입니다. 그 쓸모를 찬찬히 살펴보면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정말 쓸모없던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매우 쓸모있을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쓸모를 다해 버려진 캔과 고철들에서 영감을 얻어 누군가는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내겐 지루하고 난해하기만 해서 공짜로 나눠줬던 책이 누군가에겐 인생책이 되기도 합니다. 물건 뿐일까요?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의 관계 속에서는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 승승장구하며 온갖 매체에 등장해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한 강연을 하고 다니기도 하고, 분명 너무 예민하고 소심해서 나중에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사람이 자신만의 특별한 감각을 발휘하며 화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 경험 중 내겐 너무 별로였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일때도 있습니다. 지식이나 경험도 그래요.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워서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시기의 경험이 감당 가능한 스트레스의 임계치를 높여줘서 강한 인내심과 의지력을 갖게 만들기도 하고, 내가 왜 배웠나 싶을 정도로 일상에서 쓸모를 찾지 못하던 학창시절의 수업에서도 내 삶의 최소한의 교양과 상식을 채워주고 의외의 순간마다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결국 쓸모라는 건, 상대적이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가치 평가는 달라지게 됩니다. 절대적인 가치 평가가 어렵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그렇다면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수많은 가치가 있지만,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하는 '지적자본'은 단순히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자본론'이다. '서적 자체가 아니라 서적 안에 표현되어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서점을 만든다.'라는 서점의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준의 지적 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안 능력이 회사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척도가 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 책의 제목 중 일부이기도 한 지적자본을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재무자본과 달리 지적자본에는 시간과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에, 재무자본처럼 레버리지를 통해 단기간에 규모를 키울 수 없습니다. 고용을 통해 지적자본을 간접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어도 돈과 같은 경제적 수단으로 누군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지적자본을 구매하고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누구나 지적자본을 쌓을 수 있습니다만, 단순히 무언가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는 것만으로는 지적자본 형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굉장한 동기부여와 실천력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해야만 해!' '불가능은없어!' '마음가짐이 부족해!' 라며 다그치는 걸로는 부족해요. 단순히 환경이 만드는 강제성만으로는 꾸준히 무언갈 하게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렇게 강제로 하게 만들어도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유하는 경험인 학창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학업에 집중하고 시간을 투자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성과는 제각각이었죠. 누구는 들인 시간 대비 좋은 성과를 얻는가 하면, 누구는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봐도 좋은 성과를 얻기란 쉽지 않았어요. 분명 일정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이른바 '시간 박치기'가 통할지는 몰라도, 경쟁 집단 내 상위에 위치하기 위해선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공부로 원하는 성과를 얻진 못합니다. 그냥 하는 것도 어렵기에, 학업적 성취의 기쁨은 필수가 됩니다. 이 성장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면 공부라는 끝없는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지난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잘하는 사람은 충분한 동기부여를 얻고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고, 못하는 사람은 희망 고문과 '왜 나는 못하는 걸까'하는 자책감에 빠져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런 맥락은 인간의 삶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상 어딜 가도 자신의 고유한 세계, 전문적인 분야,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와 인정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무언가를 꾸준히 실행하고 성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아주 개인적인 가치 형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 위에 그들이 '재밌을 것 같다.'라고 느낄 수 있는, 구심력을 갖춘 이념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열쇠다. 내가 사장이고 그들이 사원이라고 해서, 나는 자본가이고 그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그런 도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확실한 '지적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지적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지적자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재밌을 것 같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 역시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주 개인적인 동기인 '좋아한다'라는 충족감이 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수행의 길을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지적자본을 구축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적자본을 보유한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재미'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제는 좋아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그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이 유의미한 시대입니다. 지적자본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을 더 알고 있습니다. 「시대 예보:호명 사회」의 저자 송길영은 '축적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축적의 시간'이 바로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하는 '지적자본'인 셈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갈고 닦을 수 있으려면 좋아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야 긴 시간을 인내하며 보상 없이도 기꺼이 할 수 있고 좋아해야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각과 공감대를 갖게 됩니다.

'덕업일치'라는 말이 이제는 꽤 흔하게 들려옵니다. 그 말을 쫓다보면 마치 유튜버나 크리에이터의 삶을 통해 좋아하는 취미 생활로 새로운 수익 창출 구조나 부업을 만들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곤 하는데요.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것과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합니다. 덕업을 일치시킨다는 건 정말 어렵고도 험난한 길이거든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성찰과 검증이 수반되고, 단지 좋아하는 감정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으로 비롯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더라도 연예인 스케줄 맞춰 따라다니고 감상하다 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팬카페에 업로드를 한다든지,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특별한 활동을 한다든지, 같은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편의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구현해보는 등 무언가 가치를 만드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건 단순한 흥미만으로는 지속할래야 지속할 수가 없는 활동이에요.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모습을 보며 '그거 왜 해?'라고 하는 일, 시간이 없어도 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하는 일, 어떤 보상이나 목표 없이도 찾게 되는 일, 하다보니 여유가 생겨서 나눠주게 되는 일, 이런 진정성있는 활동 속에 '좋아한다'라는 진심이 녹아 있습니다. 그 진심이 내게 알맞고, 내게 필요한 지적자본이 될 수 있는 자산입니다.


- 사회와 산업의 혁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개인의 커리어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핵심은 '축적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 자신의 조예와 취향이 벼려질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며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자산으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예보 : 호명사회」, 송길영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을 읽고 (2/2)​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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