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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이 제안이 될 때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를 읽고 (2/2)

by 온명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를 읽고(1/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게


변혁은 현재, 어디까지나 과정에 놓여 있으며 앞으로 더욱 깊고 넓게 침투해 갈 것이다. 그 가능성을 하나하나 가시화하고 디자인으로서 제시하는 것. 그것이 기획 회사의 사명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디자인의 역할을 묻는다면 '예쁘게 꾸미는 것' 정도로 인식되곤 합니다. '예쁘다'라는 표현이 담아낼 수 있는 예쁨의 범주는 너무나 방대한 데다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개인차가 너무나 크고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디자인 관점으로 예쁘다는 말은 단순히 알록달록한 색상과 화려한 장식으로 어떤 대상을 꾸며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상품과 서비스의 기능에 적합한 형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디자인적 미학입니다. 예를 들어 컵을 만든다고 가정해 본다면, 컵은 물 같은 액체를 담아낼 수 있는 형태에 손잡이가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컵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그 시기에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위 '트렌디'한 이미지나 색상으로 컵을 꾸미는 것이 디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기능을 적합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는 건 컵의 사용자와 목적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컵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린아이라면? 컵과 손잡이의 크기가 사용자에게 맞게 작아져야 합니다. 수납공간 상 제약이 있다거나 효율적인 보관을 위해 손잡이가 없는 컵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손잡이가 없는 컵을 디자인하는 건 어떨까요. 손잡이 없어진 대신 컵을 사용하기 편하게 컵의 표면에 손과 손가락 홈이나 거친 표면을 사용해 컵을 잡기에 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컵으로 정해진 양을 섭취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용량을 표기하는 선이 있는 컵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앤티크한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컵을 찾는 사람이라면 앤티크한 디자인의 컵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컵의 디자인은 사용자와 목적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능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느냐는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을 넘어서 상품과 서비스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언가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 아이디어와 계획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디자인이라는 상상을 실체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집니다.


디자인은 가시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생각에 형태를 부여하고 고객 앞에 제안하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결국 ‘제안’과 같은 말이다.


왜 제안을 해야 하는 걸까? 컵 안에 물이 있습니다.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을 앞에 두고 있는 내가 목이 마르지 않다면? 심지어 손 뻗으면 닿는 곳에 물이 넘치도록 많이 있다면? 발이 닿는 곳 어딜 가더라도 물이 있다면, 물의 가치는 크게 반감하게 됩니다. 반대로 목마른 사람에게 물은 보통의 물보다 엄청난 가치를 갖습니다. 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목마른 사람이 찾아가든, 누군가 대신 가져오든 해야만 합니다. 가치는 '그저 있음'으로는 부족합니다. 필요가 있는 곳에 가치가 '전달'되어야만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제안이 필요합니다. 어떤 브랜드의 상품과 서비스를 찾는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치를 어떤 방법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고려하고 가시화하는 것이 '디자인'이고 곧 '제안'입니다. 현시대는 그야말로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나고, 넘쳐나는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장소인 플랫폼도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취향 중심 소비가 커가는 지금, 가치 있는 것을 선별하고 제안하는 능력 자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명확히 구분되어 주류가 아니면 잘 소비되지 않고 존중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중매체가 주류 문화로 소비될 콘텐츠를 직접 선별함으로써 강력한 플랫폼으로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중매체는 콘텐츠 장벽을 세우고 수문장을 자처하며 진입장벽을 높여 그들의 권위를 재생성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SNS가 등장하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가 대중화되자 대중매체의 권위는 해체되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개인매체의 등장으로 개인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생산한 콘텐츠를 대형 플랫폼에 유통할 수 있는 기회와 채널을 직접 운영할 권한을 얻었습니다. 그야말로 다양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취향이라는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고 소비의 중심에 서 있는 현시대에 제안하는 능력은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지적자본이라는 가치를 형성하고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브랜드에 그들의 지적자본이 필요한 소비자를 찾아서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할 때 소비자의 취향과 소비 목적에 꼭 맞는 제안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일반적인 소비자 위치에서 머무르지 않고 해당 브랜드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주변에 알려주는 열렬한 브랜드의 팬이 됩니다.

이 시대의 취향 소비자들은 이미 지적자본을 형성한 사람들입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인내하고 보상 없이도 기꺼이 지속해 오며 경험으로 축적된 그들만의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각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죠. 지적자본을 형성하고 그 가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했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목이 마른 사람 앞에 물을 가져다준 것과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해 온 경험은 지적자본이 되고,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게 구체화하고 가시화하는 제안을 통해 브랜드는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어떤 1을 만들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부산물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당연하다. 산물이 없으면 부산물도 없다. (중략) 그것은 무언인가를 이루어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0에는 아무리 무엇을 곱해도 0이다. 1을 만들어 내야 비로소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행복은 부산물에서 나온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을 목표로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저 출근 시간보다 일찍 눈을 뜬 덕에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미뤄오던 집 안 청소를 했을 때도 깨끗해진 집을 돌아보며 뿌듯함이 차오릅니다. 매일 오가는 길 위에서 맞이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해 잠시 멈춰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행복은 어떤 크고 위대한 일을 성취했을 때만 닿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아주 작고 사소하더라도 무언가 행동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은 부산물이라는 개념은 「멋진 신세계」에서도 느꼈었습니다. 자유와 안정 사이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상(像)은 결국 굴레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결핍과 고통이라는 문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제 해결이라는 행위를 끌어냅니다. 문제 해결의 과정과 끝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삶은 또 다른 문제와 결핍으로 안내합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행복이 주는 달콤함은 인간이 계속해서 다음으로, 또 그다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렇게 자유는 성취의 부산물인 행복을 또다시 경험하기 위해 끝없이 달리는 인간상을 만들어냅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삶과 더는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고 편해지고 싶은 욕망 사이 끝없는 혼돈을 헤치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 아닐까요.

중요한 사실은 '무언가 한다'라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저 사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조건이거든요. 살아 있기에 무언가 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삶이 끝나지 않는 한 매일 행복의 조건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정말 나의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성취에서 행복을 상상하고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0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내 삶에서, 나를 위한, 나만의 1을 만들어내는 것은 ‘좋아한다’라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마음 위에 있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1'을 만들어 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 저자로서는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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