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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은 거

결말 : 마지막이 갖는 의미

다니엘 핑크의 「언제 할 것인가」를 읽고 (3/3)

by 온명


「중간 : 왜 중간에는 힘이 빠질까?」, 다니엘 핑크의 「언제 할 것인가」를 읽고(2/3)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29살, 39살, 49살, 59살이 되면 사람들은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28살, 38살, 48살, 58살 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167p


나이 끝에 9가 들어가는 나이를 아홉수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아홉수를 불길한 시기로 여긴다. 아홉수에는 행실을 특별히 조심하고 결혼과 이사 같은 중요한 일은 이 시기를 피해가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언제 할 것인가」에서도 10년 단위의 마지막 해가 되면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성찰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홉수라고 29살, 39살, 49살, 59살 같은 특정 나이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간은 '마지막'이라는 개념을 인식할 때, 그 과정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며 의미를 찾고 평가를 내려서 기호화한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10대, 20대, 30대라고 부르며 인생을 10년 단위로 구분짓는다. 아니, 단순히 구분 짓는 것을 넘어서 이 개념 속에서 살고 있다. 각 시기마다 해야할 일과 달성해야할 목표를 정해두고, 각 시기마다 갖는 의미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생애 주기가 10년 단위로 완결성을 갖기 때문에 나이 끝에 9가 들어가는 시기인 아홉수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셈이다. 우리는 왜 마지막 순간에 큰 의미부여를 하게 되는 걸까?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기억할 때 가장 강렬했던 순간(피크)과 그것이 완결되는 순간(끝)을 가장 잘 기억한다고 그들은 말했다. 176p


대니얼 카너먼이 발표한 '피크엔드 법칙'에 따르면 가장 강렬한 순간과 완결되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잘 남는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에 일어난 것은 과장해서 기억한다. 사람이 어떤 사건을 기억하게 될 때 그 사건이 통째로 한치의 오차 없이 기억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오감으로 기록된 모든 감각과 감정, 사건에 연관된 모든 인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의 순차적 나열하는 식으로 모든 것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저장되지 않는다. 가장 강렬한 순간과 완결되는 순간과 같이 중요한 순간을 중심으로 기억이 재구성된다. 중요한 순간의 중심부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맡았던 냄새와 피부를 스쳤던 바람의 감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축소되거나 생략되어버린다. 기억이 불완전하고 무조건 신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그 사건을 회상하더라도,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순간이 다르기 때문에 왜곡과 오차가 생기게 된다. 결국 아홉수는 '기억을 효율적으로 하려는 뇌의 매커니즘이 만든 현상이다'라는 관점으로 해석 할 수 있다. 특정 기간 내 벌어진 사건을 효율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중요한 순간을 기준으로 기호화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될 때, 모든 과정을 성찰하며 평가를 내리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게 된다.


마지막 초콜릿이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그 초콜릿이 다른 초콜릿보다 훨씬 맛있다고 답했다. 186p


마지막이라는 이유만으로 초콜릿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마지막은 하나의 사건이나 과정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이며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된다. 의지가 희미해지고 포기가 유혹하는 '중간 시기'를 무사히 넘어가기 위해서 의미가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의미는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기호화하는 과정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 마지막은 자신 안에 내재한 핵심가치와 우선순위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마지막을 떠올림으로써 현재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작을 가능하게 만든다. 즉, 미래를 통해 현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떠올랐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현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스토아 학파의 주장과 같다. 결국 시작-중간-결말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결국 결말은 우리를 올바른 시작을 할 수 있는 '지금'으로 이끈다.





시간이라는 통합체

'당연히' 여기는 시간 단위가 대부분 실제로는 우리 조상들이 시간을 가두기 위해 세운 울타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초, 분, 시 일 등은 모두 인간의 발명품이다. 19p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닌, '시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축이자 흐름 속에서 살고 있다. 「서사의 위기」를 읽고 작성한 감상문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과거를 구제하고 현재와 연결하면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얻게 된다.'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을 현재와 구분짓고 실존하는 것처럼 여기지만, 과거도 미래도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하다. 과거를 향해도, 미래를 향해도 결국은 현재로 돌아오며 늘 현재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점이자 긴 축인 현재 속에서 살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닌, 늘 현재에 살며 현재에서 연장된 개념을 믿을 뿐이다.

전에 작성한 「언제 할 것인가」의 감상문 「시작 : 성공적인 시작의 세 가지 원칙」에서도 말했듯 무언가를 실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를 묻는다면, 최고의 타이밍은 언제나 '지금'이다. 단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고 실천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언제 할 것인가」에서 말하는 타이밍의 과학이다. '언제나 지금을 살아라'라는 말을 과학적 실험과 통계들을 근거로 길게 풀어썼을 뿐이다. 늘 우리가 외면하는 문제는 사실 '언제 할 것인가'를 논하는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다만, 현재라는 시간 축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면 올바른 시작을 돕는다. 늘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핑계로 실천을 회피하고 변명했던 내게, 이 책은 그저 실천하면 된다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삶으로 가는 경로는 그 많은 현자의 조언처럼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하나의 일관성 있는 전체, 즉 우리가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통합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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