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진료, 첫 위험 신호

바스러지는 날들

by 온담

부서지기 시작한 건 자퇴 그것보다 훨씬 전이었다.


때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에서 창가 자리에 앉으면 늘 옆을 보며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무덤덤했다.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날 찾는 사람도 어차피 없을 거니까,

그냥 그대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 직후에는 입에 오르내릴지 몰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다들 지낼 거니까.

매일 같이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3학년이 된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굳이 달라진 걸 찾자면, 죽음과 관련된 생각들이 더욱 심해지고 일상이 되었다는 것 정도.

심지어 만약에 담임이 별로 안 좋은 선생님이 걸리면 진짜로 죽으려고 했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이 너무 좋으신 분이 배정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이것 역시 핑계였지만, 이 핑계로 삶을 조금 더 살아갔다.


그 해 여름방학이 되었다.

방학 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틀어박혀 울다가 연습하고 그렇게 지냈었다.

무언가를 하기 너무나도 힘들었고,

살기 위해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탈출구를 잘못 찾았다.

나는 나 자신을 해쳤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나의 팔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동시에 나의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렇게 팔에 난도질을 해댔는데 마음은 상처보다 더 괴로웠는지, 아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고, 쾌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20분이 지날 무렵, 먼저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 왜 난도질했지.

결국 달라지는 건 없잖아.

잠깐의 힘듦을 해소한다고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할까?

이 현실을 깨닫고 며칠 뒤, 결국 나는 학교 주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있었고, 방학중에 예약을 했다.

왠지 미성년자는 혼자 가면 안 될 것 같아 담임 선생님께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담임선생님과 함께 병원에 갔다.

같이 길을 가면서 대화도 가볍게 나누고,

무거웠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같이 병원으로 갔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일반 병원과는 사뭇 달랐다.

차갑지만은 않은, 이상하게도 포근한 분위기였다.

예약을 했기에 조금 대기했더니 접수대에서 이름을 불렀고,

나와 선생님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앞에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그럴까.

죽음과 자신을 해친 이야기를 했다는 정도만 이야기했다는 것만은 기억난다.

당시에는 말을 제대로 잘하지는 못했기에, 할 말을 써갔던 것도 기억난다.

그래도 어찌어찌 말은 했고, MMPI를 비롯해 여러 우울에 관련된 설문지를 하라고 해서 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의사가 그랬다. 당장 약을 먹어야 할 수준이라고.

그렇게 부모님까지 호출되었다.


그렇게 나는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약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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