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연애의 범주, 정말 배려가 없었던 나였나
"제 인간관계는 안중에도 없으신 것 같아요."
"저도 회사인데, 배려가 너무 없으시네요."
"한쪽 말 만 듣고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는 게 무서워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한 불편함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배려 없음'의 정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선을 넘은 걸까. 혹은, 어떤 기준을 침범했던 걸까.
그 기준은 나와 공유된 적이 없었는데.
허용된 줄 알았던 영역에서, 나는 공개연애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과 틀 안에서 행동했다고 생각해왔다.
그는 관계 노출에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한 감정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사내연애라는 특수성 속에서, 다만 나 역시 조심하려고 애썼고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소소한 감정을 나누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관계가 흔들리는 시점에서, 그는 나의 행동들을 ‘감시‘나 통제’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독립성과 사적 영역이 위협받는 감각에 집중한 듯했다.
사내연애는 원래 조심스럽다.
그저 같은 부서, 같은 사무실의 사람들 속에서 우리의 사이가 업무가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이름은 사무실 회의실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도했다.
때로는 내 입을 거치지 않아도 이름이 흘러나오는 공간이 회사라는 곳이다.
내가 말을 삼켜도, 내가 숨죽여 있어도, 사람들은 묻고, 알고, 흘린다.
그건 연애를 하기로 한 순간부터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당신 성향상 주변에 말했을 것 같았다"고 말했고,
내가 말을 했을 것 같다는 '예상'으로 불편함을 표현했고, 그 불편함은 결국 내 책임이 되었다.
불편함을 설명하기보다 그 불편함이 이미 나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듯 정리했다.
나의 소통의 의도를 부담으로 해석했고, 관계의 결함으로 치환했다.
그는 내게 묻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해석하고, 그 원인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돌렸다.
정말 그가 원했던 건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할 하나의 설명이었을까.
그 사람에게 연애는 말하지 않아야 유지되는 것, 숨기고 감춰야 살아남는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바라는 연애의 방식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향한 관심과 챙김의 영역이 마치 내가 무언가를 ‘노출’시킨 사람인 것처럼 낙인찍히는 이 구조는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관계는 서로 합의하며 나누는 것인데, 그는 그 합의의 부재를 나의 무례로 해석했다.
그가 불편함을 느낀 것이 잘못은 아니다.
누구나 다를 수 있고, 민감한 지점은 존재한다.
그러나 관계란 그 불편함을 공유하고, 함께 조정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는 내 표현을 '피로감'으로 간주했고, 내 조심스러움조차 ‘조심하지 않은 것’으로 되돌렸다.
나는 아무것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의 말엔 설명보다 결론이 먼저였다.
그는 자신의 방식과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건 배려 없음으로 간주했고,
감정 과잉이 되었고, 결국 정리의 명분이 되었다.
정말 내가 배려가 없었던 걸까.
아니, 어쩌면 그는 내 말들이 불편했던 게 아니라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관계 속 진심이 불편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이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던 시간까지 모두 짐작하고 조심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듣지 못한 그 사람의 불편함까지 책임졌어야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