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는 싫어요 진심만을 말하는 사람이라서
"저는 답정너로 물어보면 절대 대답해주지 않아요."
자기 기준에서 진심이 아닌 말은 의미 없다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굳이 맞춰줄 이유는 없다고.
그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진심은 언제나 귀하고, 거짓된 위로가 되레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딱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는데 그때부터 나는 뭔가를 말할 때마다
내가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 이건 또 어떤 반응으로 돌아올까?
혹시 이건 너무 ‘답정너’ 같은가? 혼잣말처럼 스스로 검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진심이란 게 반드시 정직한 칼날로만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쩔 땐 상대를 위한 배려의 언어도 충분히 진심일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상대가 힘들어할 때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건
그게 100% 확신은 아니더라도 마음을 붙잡아주고 싶은 소망이 담긴 말일 것이다.
“그건 사실 아닐 수 있어”라고 차갑게 말하는 게 과연 더 진실한 걸까?
그는 늘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확고함 앞에서
아주 조금씩 내 감정의 결을 접고 있었다.
‘듣고 싶은 말’이 꼭 위로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은 확인받고 싶은 말, 상대의 애정을 체감하고 싶은 말, 내 마음이 맞닿아 있음을 느끼고 싶은 말.
나는 그런 말 한마디가 서로를 더 따뜻하게 만들고, 더 오래 머무르게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말은 진심이 아니라며 가볍게 흘려 넘겼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반대의 말을 꺼내면서 "전 당신의 기대에 맞추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을 오해받지 않게 말하는 것보다 그에게 오해받지 않으려고 침묵하는 것을 택하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건 소통의 차이라기보단 마음을 주고받는 온도의 차이였던 것 같다.
그는 늘 자신이 진심만을 말한다고 믿었지만,
그 말들이 상대를 어떻게 흔들고, 어떤 방식으로 멀어지게 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이 꼭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게 관계를 지키는 방법일 수 있다고 믿는다.
진심이라는 건 꼭 날 것처럼 드러내야만 정직한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배려나 망설임,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는 그 1초의 침묵이 오히려 더 깊은 진심일 때도 있다.
가끔은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라는 게
거짓이 아니라 ‘확인’이었고,
위로가 아니라 ‘지지’였고,
“나 여기 있어”라는 작은 신호였다는 걸 너무 늦게야 깨닫기도 한다.
그런 말 하나가 있었더라면, 그때 우리는 그 밤을 조금 덜 서럽게 끝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함이 반드시 관계를 지키는 힘은 아니라는 걸.
말이 옳다고 해서, 그 말이 항상 좋은 말인 것은 아니라는 걸.
그도 알았으면 좋겠고, 전하고 싶은데, 너무 늦어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나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을 서로 어긋나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말이 꼭 완벽한 진실이 아니어도, 그 순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진심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