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홍은성의 집사로 온 건가요?
홍은성은 멀쩡해 보였다. 그런데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 집에 오고 전완근 피부에 두드러기가 났다. 바퀴를 거하게 퇴치하는 날 간지러웠다. 목이 아프고 코가 막혔고, 밤새 자고 일어난 후 아침이면 어지러웠다. 기억을 거슬러 보니, 계약서를 작성하러 온 날도 그랬다. 부동산을 끼지 않고, 다이렉트로 계약한 덕에 이 집 거실 바닥에 앉아 계약을 했는데, 그날 팔뚝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고, 간지러움이 극심했다.
그날, 할아버지는 "페인트를 새로 칠해서 환기 중"이라고 하셨다. 페인트와 바퀴 퇴치 스프레이가 원인인 것 같았다. 환기를 열심히 했지만 밤이면 나를 공격하는 무언가가 침투했고, 내 의심도 자라났다. 급하게 공기청정기를 알아봤다.
공기청정기가 도착하자마자 설치를 했다. 환기 중인 낮임에도 불구하고 HCHO가 ‘주의’로 떴다. 이는 포름알데히드의 약자, 새집증후군과 페인트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을 의미한다.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자는 동안에는 침실 쪽으로 공기청정기를 옮겼다. 목도 아프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낮에 환기를 충분히 하는데도 저녁만 되면, 이산화탄소 수치가 비상식적으로 치솟았다. 30평 가까운 집에 혼자 사는데, 이 정도 농도가 갑자기 높아질 수 있나?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곰팡이 포자도 사람처럼 산소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며, 집 안에 곰팡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눈물이 났다. 벌레도 모자라서 곰팡이?
침실 벽을 만져보니 폼보드였다. 최근에 비도 많이 왔고, 습기를 머금은 폼보드에 곰팡이가 핀 건 아닐까. 침실 벽 틈에서 자꾸 나오는 좀벌레와 돈벌레도 곰팡이랑 함께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골치가 썩는다. 실리콘은 거의 벗겨져서 걸레받이 밑에 빈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벌레들이 제 집처럼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 실리콘을 새로 치라는데, 그조차도 부담스럽다.
침실 벽 바깥, 바로 옆에는 정화조가 있다. 집주인이 그 위에 은색 돗자리와 빨간 대야를 엎어놓았다. 그 옆으로는 사다리, 각목, 나무 대걸레 대, 빗자루 대 같은 할아버지의 잔짐들이 보인다. 아궁이 같은 것도 붙어 있고, 모든 게 보기 싫었다. 청소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이 날을 위해 보안경을 사두었다. 나이키 긴팔 긴바지 세트업을 입고, 보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3M 목장갑을 꼈다. 겉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보안경 하나만으로 전문가가 된 느낌. 유유히 거미줄을 헤치고 지나 정화조 앞으로 갔다.
그 밑에 있는 돗자리를 슬쩍 열었다. 으악! 벌레들이 뒤엉켜 움직이고 있었다. 수천 마리의 개미 떼, 지네, 지렁이. 돗자리를 살짝 덮고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챙겨 나왔다. 다시 돗자리를 열고, 난사.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는데, 갑자기 귀뚜라미 4~5마리가 튀어나와 내 주변을 날뛰었다. 할아버지의 각목을 들어 그들을 찍어 눌렀다. 살생이라 욕해도 좋다. 내가 살려면 이들이 조용해야 한다.
옆으로 지네가 기어가고, 집게 달린 벌레가 지나가고, 지렁이는 꿈틀거렸다. 지렁이는 텃밭으로 옮겨주고, 나머지는 쓰레받기로 쓸어 담았다. 돗자리 밑에 서식하는 것 같아서 돗자리와 대야를 아예 빼두었다.
이불에도 곰팡이가 있는 것 같아 고온살균이 필요했다. 침구를 모두 들고 세탁방으로 갔다. 여행 캐리어와 등산 가방을 끌고 갔다. 남들이 보기엔 여행 가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속마음은 전투에 임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동네 세탁방 외벽은 거미줄로 가득했다. 산 아래 이 동네에선 당연한가? 왜 여길 가도 저길 가도 벌레인지! 짜증이 일었다.
세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똥 향기가 훅 하고 코를 찔렀다. 거실에 앉아 있는데, 정화조에서 가스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어지럽고, 구토가 올라왔다.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고, 다시 돗자리로 정화조를 덮었다. 돗자리가 이렇게 중요한 존재였다니.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정화조 뚜껑 교체를 요청했다. 비용은 내주신다고 하셨고, 대신 내가 알아봐야 했다. 세 군데에 문의해 가장 저렴한 곳으로 예약했다. 어지럽다고 하니, 기사님이 오전 일 끝내고 오후에 바로 와주시겠다고 했다. 구세주였다.
외부 일정 때문에 정화조 쪽 문을 열어둔 채 나갔다. 교체를 마친 기사님의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깨끗하게 마감되었고, 다음날까지 건드리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다. 집에 들어와 샤워하고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도 집 안 어딘가, 아직 뭔가 남아 있는 듯했다. 어지럽고, 미묘하게 매캐했다. 아직 남은 가스일까? 아니면 그냥 트라우마일까. 두려웠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칼칼했던 목과 막혔던 코가 조금 나아진 느낌이었다. 알레르기의 원인은 정화조였을까?
주방엔 각종 벌레들이 ‘방문’해 있었다. 다행히 내가 미리 설치한 약 덕에 다 죽어 있었다. 새끼 돈벌레, 거미, 바퀴벌레. 그들의 집이었던 정화조가 사라지니, 새 집을 찾으려 유랑 중인 것 같았다.
내 집은 얼추 소탕했지만, 현관 바깥 계단 밑 창고가 수상했다. 문을 열어보니, 집 보러 올 때는 안 보였던 집주인의 짐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고장난 라디오부터 뭔지 모를 잡동사니까지. 정리할 수 없는 공간. 쥐덫과 약 몇 개를 던져놓고 문을 닫았다.
공기청정기가 열일을 해도, 목은 여전히 칼칼했다. 결국 대학병원에 가서 알레르기 정밀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며 계속 생각했다. 곰팡이가 원인이라면, 이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백수 n년차는 돈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할까.
월세를 내고 들어온 이 집에, 집주인의 짐까지 덤으로 딸려왔다. 다 필요한 거라며 남겨둔 것들, 이게 쓰레기인지 유산인지 헷갈린다. 또 이 집이 나를 병들게 한 건지, 내가 병든 채 이 집에 온 건지도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야한다. 체력도 올려야한다.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