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성의 주인은 나다.
행복했던 2주가 지나고, 아침마다 바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혼란스럽고 막막했다. 살면서 여태 2~3마리의 바퀴벌레를 본 것이 다였다. 이 집에 와서는 매일 한 마리씩 마주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쓸고 닦기를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온 힘을 다 했고, 온도와 습도 관리까지 했다. 현관에서 마주한 옆집 사람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 얼마 전에 이사왔는데, 바퀴벌레가 너무 나와서요. 그 집에도 바퀴벌레 나와요?” 하고 물었다. 당연히 나온다고 한다. 건물이 오래되서 어쩔 수 없다고. 바퀴벌레가 나오는 게 언제부터 당연한 거였지? 이 동네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거 같다. 그 당연한 게 나에겐 당연함이 아니었다.
걱정이 시작됐다. 어지러웠다.
홍은성은 나의 예민한 오감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자꾸 어디선가 등장하는 벌레, 칼칼한 목구멍과 어지러움, 전파사를 운영했던 집주인 할아버지가 직접 고치고 수리해서 더러운 마감과 부족한 미감. 전 집에서는 모기와 초파리 외엔 벌레를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모기 빼고 다 있다. 거미, 개미, 돈벌레, 하루살이 등. 최근에는 바퀴가 하루에 하나씩 눈에 보여서 비상이었다. ‘바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눈에 띄면 때려 죽여 처치했다. 어느 아침, 싱크에 나타난 바퀴를 놓쳤다. 손이 닿지 않는 가스레인지 뒤쪽 벽틈으로 도망쳤다.
그 순간, 울음이 터졌다.
그건 바퀴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무력감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달려왔다. 엄마와 함께 슈퍼로 가서 바퀴전용 스프레이와 겔약을 샀다. 울고 있는 내 옆에서 엄마는 나도 무섭다고 말했다. 결국 집주인에게 SOS 쳤다. 할아버지가 바퀴퇴치 스프레이를 한 손에 들고 달려오셨다. 거대한 오븐 일체형 가스레인지를 둘러메고 안쪽을 청소해 주셨다. 빗자루로 쓸고, 스크래처 나이프로 기름때를 긁어 떼고, 걸레질을 했다. 안쪽에서 몸을 웅크리고 애써주시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께 죄송하면서 감사했다.
할아버지가 싱크 하부장 쪽으로 스프레이를 난사했다.
“반대편으로 나오는지 봐.”
반대편에선 나오지 않았다. 엄마와 할아버지는 바퀴벌레가 없는 거랬다.
“제가 오늘 아침에 놓쳤다고요.”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어, 가스레인지를 제자리에 두었다.
92세 할아버지신데, 힘이 미친 장사시다. 나는 그를 '바퀴 브레이커 92'로 명명했다. 나에게 바퀴 퇴치 히어로가 있다면 이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이 탓에 힘을 쓰고 숨을 고르며 서 계시는 할아버지께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다…이 이상의 마음은 표현하지 못하겠다. 나는 드릴 게 없어 할아버지가 심어놓고 가신 상추와 오이를 따드렸다. 할아버지는 침실 빼고는 방문을 다 빼꼼 열어보시곤 흐뭇하게 웃으신다. 내가 해놓은 게 귀여워 보였나보다.
할아버지와 엄마가 떠나고 난 뒤에, 바퀴약을 풀세트로 샀다. 겔약, 끈끈이 트랩, 스프레이. 옷장용 제습제도 샀다. 엄마와 슈퍼에서 산 바퀴 스프레이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난사한 탓에 하루 만에 다 썼다. 챗지가 말하길, 바퀴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 근처에 겔약을 두면 바퀴가 학습해서 유인용 겔약도 피해 다닌단다. 그래서 48시간 후인 내일, 겔약과 트랩을 설치하기로 했다.
제습제는 집안 곳곳에 두었다. 집 안에 습도가 높으면 바퀴가 나온단다. 부엌 구석과 하부장, 각 방구석에 배치했다. 10개가 부족했다.
스레드에서 어떤 이가 다른 약은 상업광고고 붕산이 최고라는 댓글이 있었다. 챗지가 붕산은 바퀴를 탈수시켜 말려 죽인 댔다. 그렇지만 바퀴는 붕산으로 알아서 오지 않는다. 유인책이 필요하다. 밀가루와 설탕. 붕산, 밀가루, 설탕을 같은 비율로 섞는다. 그걸 틈새에 뿌리면 직빵이란다. 설탕은 유인책이고 밀가루는 밥이다. 밀가루와 붕산도 같이 먹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습기로 습도 50%를 꾸준하게 유지하기. 습도 70%가 되면 바퀴가 신나게 파티한다고.
벌레가 나타나면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도록 패브릭 홈슬리퍼 대신 버켄스탁 체르마트(실내용)를 샀다. 바닥이 딴딴해서 나에게 느낌이 전달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장갑도 곳곳에 배치해 뒀다. 언제든 손으로 죽일 수 있도록.
겔약을 미리 설치해 놓은 세탁기 쪽에 바퀴가 뒤집어 죽어있었다. 그래서 막대기로 빼려고 하니 바퀴가 도망갔다. 기절해 있었는데, 내가 깨운 것 같다. 짐작해 보건대 주방 쪽을 스프레이 폭탄을 뿌려놓으니, 베란다 쪽으로 피신했다가 겔약 먹고 기절한 거 같다. 부엌에서 베란다는 긴 거리가 있고, 지나갔으면 내 눈에 보였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아마 배수관 쪽으로 다이렉트로 이동하는 하이패스가 있는 듯 했다. 세탁기 아래와 세탁 쪽 배수관 주변을 스프레이로 난사했다.
‘넌 나와 공생할 수 없다!’
아침부터 바퀴와 전쟁을 하다 보니, 피곤했는지 오후 7시부터 졸렸다. 푹 자고 일어나니 밤 12시.
밤에 기습으로 불을 켜고 주방을 방문했다. 다행히 바퀴는 보이지 않았다. 이후로도 틈틈이 급습했는데 보이진 않았다.
그리곤 아침에 일어나서 침구류를 모두 세탁하고 싶어서 벗겨내고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 근처에서 죽어있는 돈벌레 하나가 눈에 띄었다. 3M 목장갑을 끼고 화장실에 가서 휴지로 감쌌다. 살아난 바퀴가 트라우마로 남아서 발로 밟아 다시 한 번 더 죽였다. 이불을 세탁기 돌리고 침실로 돌아오니 입구에 또 다른 돈벌레 하나가 죽어있었다. 돈벌레는 어디서 나타나는 걸까? 바퀴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돈벌레 시체는 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뭐든 결과물이 보이니 약효는 있는 듯하지만, 영 찝찝하다. 눈을 감으면 암흑 속에서 바퀴들이 나를 약 올리듯 걸어 다닌다. 미쳐버릴 것 같다. 아직도 집 어딘가에 바퀴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벌레와의 전쟁에서 내 성을 지킬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집의 왕은 나다.
나는 이 전쟁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여름 내내 촉을 세우고 싸워서 승리할 것이다.
아니, 승리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