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살리는 집, 홍은성

에어컨 없이 사는 여름

by own scene

시간을 좇던 삶에서, 시간을 조율하는 삶으로,

그렇게 나는 새로운 삶을 그리며

홍은동의 작은 요새, '홍은성'으로 이사했다.


난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에게 유럽은 매력적이다. 수백 년을 견디며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유럽의 건물들. 그 안에서 에어컨도, 엘리베이터도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고요한 고집이 느껴진다. 나는 그 고고한 태도가 고귀해 보였다.


나도 이 집에서는 태초의 인간처럼 살고자 결심했다. 에어컨과 냉장고, 전자레인지, 텔레비전. 편리를 위해 들여놓은 것들이 정작 내 눈에는 불편함의 상징이었다. 냉장고는 공간을 먹어치우는 하마 같았고, 에어컨은 천장에 박힌 커다란 감시용 카메라 같았다. 이것들을 치우자, 집은 이제서야 '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는 온전히 내 감각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고자 다짐했다. 효율보다는 본질에 집중하며, 내 삶에 중요한 건 무엇인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처음부터 설정하고 싶었다.


냉장고 대신 텃밭에 자라나는 싱싱한 채소들이 함께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창밖으로는 고추 나무와 대추 나무가 바람에 맞춰 몸을 흔드니, 메마른 내 일상에 다시 숨을 쉬는 법을 알려줬다. 매일 아침 새들이 들렀고, 커피향을 따라 날아온 나비는 날개짓으로 인사하고 갔다. 365일 똑같은 건물만 바라보며 생명만 이어가던 강남과는 다르게, 홍은성은 내 감각을 다시 걷어올렸다.


사실 10평대였던 강남 집에서는 공간 분리 없이 모든 것이 내 눈에 담겨 날 답답하게 만들었다. 텃밭 달린 홍은성은 방이 4개나 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침실, 작업실, 힐링방과 옷방으로 공간을 분리하니 마음도 눈도 편안했고, 하루의 루틴을 잡기도 수월했다. 10분이면 끝났던 청소가 이 집에서는 텃밭에 물 주기부터 청소와 세탁까지 두 시간이 걸렸지만, 감수 가능했다. 집이 넓어지니, 내 세상도 커진 것 같았기에.


이렇게 커다란 집에 저렴하게 산다니, 집을 잘 구했다며 내 스스로가 기특했다. 부동산을 끼지 않고 직접 거래했기에 더욱 대견했다. 집의 애정도가 커질수록 청소하는 시간은 늘어났고, 이 집을 자세히 뜯어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청소기를 밀다가 닿은 벽은 고무처럼 물렀고, 단단한 줄 알았던 천장은 속빈 강정처럼 얇은 합판만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깔끔해 보였던 화이트 인테리어는 사실 곰팡이를 덮기 위해 덧칠한 방수 페인트였고, 창틀과 걸레받이 틈은 어설프게 벌어져 있었다.


이 집은 스스로를 실험대에 올린 나를 더 까다롭게 시험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것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치만 이제는 내 감각에 집중하며 살아보기로 했으니, 완벽보다 감각을 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흐린 눈을 장착하고 살기로 했다.


의욕을 가질수록 이 집은 시험 레벨을 높여나갔다.

고요했던 2주의 시간을 끝내고, 홍은성은 진짜 얼굴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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