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때로 후퇴다

전에도 이런 집에 사셨어요?

by own scene

"전에도 이런 집에 사셨어요?"

하루 종일 내 머리를 때리는 질문이었다.


친한 인테리어 대표님을 초대해서 집을 봐줄 수 있냐고 요청했다. 그는 바로 달려와서 봐주었다. 감사한 마음에 거하게 대접을 해야 하는데, 이 집은 에어컨도 냉장고도 없는 터라 오시기 전에 시원한 음료를 사러 나섰다. 편의점을 가는 길에 대표님을 만났다.

"대표님, 편의점 같이 가실래요? 에어컨이랑 냉장고가 없어서 더워요. 마실 거 사러 가는 중이었어요."

"주차하고 같이 가요."


음료를 하나씩 사들고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대표님께 이 집의 문제점을 쪼르르 일러바쳤다.

"여기가 침실인데요, 여기서 계속 벌레가 나오고, 곰팡이가 있는 것 같아요. 폼보드 곰팡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손으로 만져보면서 “폼보드는 곰팡이 안 생겨요.”

“진짜요? 제가 이산화탄소 수치도 높고 어지러워서... 이 안에 곰팡이 때문인가 했거든요.”

“틈 없이 시공하면요.”

그 한 마디에 희망도 함께 틈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폼보드만 바꾸면 될 줄 알았는데, 이것이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틈 없이 잘 시공하면'이란 조건이 달렸지만 말이다.

집을 한 바퀴 같이 둘러보았다. 대표님은 어둑한 창문에 관심을 가졌다. 이곳은 지하 쪽이라 어두워서 내가 '지옥 창문'이라 부르는 곳이다. 대표님이 창문을 여는 순간, 곰팡이 냄새가 밀려왔다.

"으 곰팡이 냄새. 닫아요. 대표님"

사실 이 지옥 창문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둡고, 눅눅하고, 거미줄이 사방으로 얹혀 있었다. 그런데도 텃밭과 넓은 집에 '열지 않으면 되지'라는 멍청한 말을 내 안에서 꺼냈다. 난 언제나처럼 나를 믿었고, 그 믿음은 나를 벌레 소굴로 데려왔다.

그도 이곳을 꼭 닫아두라고 당부하였다. 방풍용으로 나온 창문에 붙이는 비닐도 있다고 일러주셨다.

"비닐을 창문에 붙이고 드라이어로 쏘여주면 비닐이 창문에 밀착해서 붙어요"

"오호, 신기한데요?"라고 했지만, 검색해 보니 그냥 ‘비닐에 접착력만 추가한’ 비주얼이었다. 나의 집에 저런 걸 붙인다는 상상을 하자, 호기심도 사라졌다.

이어서 미적으로 신경이 쓰였던, 화장실과 베란다를 보여드렸다. 두 곳 벽에 배관이 타고 흐르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으로 가리면 좋을지 여쭤보고 싶었다.

먼저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 벽에서부터 튀어나온 배관이 'ㄷ'자로 꺾여 다시 벽을 타고 올라갔다. 이 배관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인데, 반짝이는 은색 스티로폼이 감싸고 이었다. 광택의 존재감이 어마무시했다.

"왜 배관을 이렇게 뺐지?" 그가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 말에 "그러니까요. 이거 너무 신경 쓰여요. 그래서 조화로 감싸야하나 수납장으로 가려야 하나 고민이었어요"라고 받아쳤다. "뭐 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둬요. 결로 생길까 봐 저렇게 해 놓은 건데, 가리면 더 곰팡이 생기고 문제가 될 거예요"

"이대로 살아야 한다고요? 하아..." 가슴이 아팠다. 이사 오기 전부터 저기는 가려야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베란다로 갔다. 사실 여기는 건물의 외벽에 할아버지가 컨테이너 벽을 세워서 베란다로 만든 공간이다. 그래서 벽에 건물 전체로 들어가는 수도관이 보인다. 그 두께는 종아리 만한데, 파란색 방수테이프를 감싸놔서 이 또한 존재감이 강력하다.

"이 파란 관은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요?"

"이건 뭐예요?"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그러셨는데, 건물로 들어가는 수도관이래요."

"아 이건 두껍게 잘 감싸 놓아서 다른 걸로 덧대도 돼요."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요? 파란색이 너무 강렬해요."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돈을 주지 않았기에 아이디어는 직접 찾아야 하나보다 싶었다.

"여기로 나가면 텃밭이에요."

"나가서 구경해도 돼요?"

"그럼요."

"와. 고추랑 상추가 엄청 많네요. 오이도 있어요!" 해맑은 모습으로 텃밭의 위용에 반응했다.

"네. 할아버지가 진짜 많이 심어놓으셨어요. 저는 꽃 같은 관상용으로 심고 싶었는데."

"하하하"


집을 재빠르게 둘러보고 에어컨이 없는 집을 벗어나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의 바뀐 차 이야기와 그 밖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동네가 벌레가 그냥 많은 거 같아요."

"왜요?"

"제 차에도 벌레가 많이 붙는 거 같아서요."

"...!"

"동네가 산 바로 아래에 있고, 건물도 오래되어서 벌레는 어쩔 수 없을 거 같아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들과 공생해야 함에 고민이 깊어졌다.


밥을 먹으면서 서로의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기자님, 이전에도 이런 집에 사셨어요?"

질문을 듣자마자 내 식대로 해석했다. '전에도 이런 (벌레 많고 곰팡이 있는 집,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는) 집에 사셨어요?"

“아니요. 저는 도시 여자였죠.” 그렇게 말하고 나도 당황했다. '도시 여자'라는 말, 너무 별로인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 말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 아님’이라는 알리바이였고, 동시에 ‘지금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전에는 도시 여자였죠. 강남에서는 10평 밖에 안 됐어요. 주방에 작업실이 있고, 옷도 있고, 침실에 거실도 있고... 동선들이 서로 엉켜서 삶이 점점 피곤해지더라고요. 창 밖으로는 다른 건물들만 보이고요. 그래서 우울해진 거 같았어요. 자연 가까이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 질문은 꽤나 무례하다고 느껴졌다. 마치 이 집을 기준 삼아 나를 등급 매기려는 것 같았다. 이 집을 싫어하는 내가, 이 집과 같은 급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며칠 동안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자리에서 ‘무슨 뜻이에요?’라고 묻지 못한 내가 더 괘씸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다시금 이 집에 온 나의 계획을 떠올렸다. 나를 위로하듯.

'난 다운시프터인걸, 지금은 이 집에서 머물 뿐이지. 이 집이 나를 규정하진 않아. 평생 여기서 살 것도 아니잖아. 여기서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시 나가면 될 뿐이야.'

사람들 시선 따위 신경 안 쓰려고 이 집에 왔는데, 정작 그 시선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이 집에 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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