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더 심해진 거죠?
홍은성에서는 냉장고 없이 지냈다. 모두가 놀라며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살아요?"하고 물었다. 나는 되려 그게 왜 놀랄 일인지 의아했다. 우울해지면서 식욕도 사라졌고, 요리할 일도 줄어들었다. 차가운 것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터라 얼음도 냉수도 필요 없었다. 실온에 보관하는 브리타면 충분했다. 텃밭에는 오이와 상추, 깻잎이 있으니 급하면 따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끼니는 삶은 달걀로 때우는 일이 즐비했다. 매일 삶는 것도 귀찮아서, 한 번에 한 판을 삶은 다음에, 껍질을 까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배고플 때마다 삶은 달걀을 꺼내 먹었다. 케첩과 스리라차 소스를 섞어 찍어 먹으면 꽤 훌륭한 나만의 별식이다. 내 중요한 식단은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지만, 냉장고는 두지 않았다. 엄마가 평소에 내가 먹지도 않는 냉동식품들과 반찬을 가져와 냉장고를 채우는 것이 내 삶에 가장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기에 '그냥 냉장고를 없애버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엄마도 그만하리라 짐작했다. 내 생각은 무참히 끝났다. 강남구에서 서대문구로 이사를 오니, 양천구에 사는 엄마에게는 더 가까운 거리였다. 이틀에 한 번꼴로 아이스박스에 반찬과 과일을 챙겨 홍은성으로 왔다. 냉장고가 없으니 보관 기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하루만 먹지 않아도 과일이 썩었고, 집에서는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벌레가 많은 집인데 스트레스가 가득 쌓였다. 하루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소리를 질렀다. 먹지도 않는 것을 왜 자꾸 가져오느냐고. 다 썩은 거 가져가라고. 엄마는 나 보러 "버리라"라고 했다. 화가 났다. 내가 요청한 일도 아닌데 왜 뒤처리는 내가 하여야 하는지. 그날은 엄마가 미안하다며, 다시는 챙겨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다음 방문에 무참히 깨진 약속이었다. 엄마는 또 수박과 복숭아, 김치와 장아찌 등을 가져왔다. 옥수수를 한가득 쪄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버리기 귀찮아서 혹은 싫어서 그걸 상하기 전에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냉장고는 없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냉장고가 있을 때 보다 더 배부르게 먹었다. 처음에는 삶은 달걀을 대신하기 위해 맥반석 달걀을 구입해 두었다. 이는 실온 보관이 가능했다. 그렇게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엄마가 보는 나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는 그날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꼭 맛집에 가서 먹어야 하는 미식가인데, 엄마 덕에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사람이 됐다. 못마땅한 삶이었다. 벌레 나오는 집도 싫었지만, 엄마 통제를 벗어나지 못한 삶이 더 싫었다. 강남의 시끄럽고 꽉 막힌 건물 속에 있을 때 보다 더욱 갑갑하고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쉽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냉장고는 없앴지만 엄마는 여전히 내 삶을 채우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없앤 건 냉장고일 뿐, 엄마가 채워놓고 가는 것들에 대해 나는 여전히 수동적이었다. 버릴 줄도 몰랐고, 막을 줄도 몰랐다. 차라리 냉장고가 있을 때가 덜 억울했던 것 같다. 엄마의 손길 없이 살고 싶은데도, 지금 나는 엄마가 남긴 삶 속에서 여전히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냉장고 없는 집은 되었지만, 엄마 없는 마음은 아직도 만들지 못했다.